한국과 일본의 참사를 기록하는 법
나는 어렸을 때 사람들이 왜 그 사람의 고향을, 도시를 묻는지 1도 이해가 안 됐다.
근데 20대가 되고 나서, 사회인이 되니 다들 왜 나고 자란 곳을 그렇게 중시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겠다.
아니 잘 알겠다.
사진이 우리의 그날을 기억하듯, 나의 머릿속 추억도 그 장면과 그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20대의 절반을 보낸 일본의 그곳, 바로 이곳, "고베"다.
이 도시 자체를 지금 보니 사랑했었다.
근데, 고베라고 들으면 모두 두 가지를 떠올린다.
1. 고베 대지진, 2. 고베규 (고베 소고기)
오늘은 전자를 일본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나누고 싶다.
고베대지진, 다들 들어 알겠지만 아직까지 '고베'라고 치면 연관검색어 1위는 고베대지진이다.
그만큼이나 파괴적인 지진이었다.
진도 4~5의 강력한 해안에서 오는 지진으로, 사망자만 6,300여 명이었다.
배산임수가 서울이라면, 고베는 일본 서쪽의 대표적 배산임수였고 바다의 경계면이었기에
직격으로 이 피해를 입게 된다.
( 이 일로 바닷가의 집은 싸지고, 산으로 갈수록 부촌이다. )
이 사진의 장소는, 내가 향후 대학교를 다니게 될 중점 역이 된다.
1995년 1월 17일.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고, 나는 그 도시에서 대학을 나왔다.
참 이럴 때 보면 인생이란 게 신기하다.
그 들이 이 대지진을 어떻게 기리는지 오늘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메인사진으로 올려놓은 그곳이다.
지진이 일어난 그 자리에 'Memorial Park' , 모든 시민들이 볼 수 있는 기억의 장소를 만들었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탑도 만들었다.
그리고 심지어 지진이 난 현장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옆에 쇼핑몰, 호텔, 결혼식장이 들어오면서 지금은 엄청난 관광지다.
그만큼 좋은 입지임에도 이곳을 기리는 것을 모두 한마음으로 약속했다.
우리나라는 삼풍백화점 참사 시 비석(추모비/위령비)을 세우려 했으나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가 극심했다 한다. 거기도 서울의 노른자 땅 아니겠는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참사 모두 추모비는 저 멀리 어디선가 외로이 그 죽음을 기리고 있다. 우리가 진짜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누군가의 어머니고 아버지였고 동생이었고 가족이었던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 아니겠는가. 근데 삼풍백화점 사고가 발생한 그곳에 가면 고급 아파트만이 위풍당당하게 빛을 내고 있다. 우리는 그 장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이 이 참사를 기리는 방법은 여러 형태이다.
일본에는 1년에 한 번 20세가 되는 성인식이 있다. 우리나라의 성년의 날처럼 말이다.
보통 다른 도시에서는 각자의 고등학교나 대학교 강당에서 모여서 이 파티(?)가 진행된다.
근데 고베만큼은 다르다.
여기가 어딜까.. 맞다. 축구경기장이다.
외국 축구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예전 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를 볼 수 있는 빗셀고베의 경기장이다.
왜 고베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모일까?
성인식은 1월의 둘째 주, 즉 1월 14일 넘어서 월요일에 보통 열린다.
근데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건 1월 17일이었다. 그래서 고베의 모든 20살의 청년들은 이곳에서 잠시
묵념하고 그날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성인이 되고 이 도시를 잠시 떠날지라도, 앞으로 누구보다 이 도시를 기억할 이들에게,
그 출발점은 바로,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날의 죽음을 헛되지 않기를 기억하려는 공동의 약속이었다.
자 이제 거울을 볼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나라의 여러 참사가 있지만 대구지하철 참사를 찾아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도시, 대구이다.
나는 대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대구 출신의 후배와 선배들이 유독 많아서인지 정감이 갔다.
그리고 실제로 한 선배를 따라 대구에 갔고,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거리에 감탄을 경하지 못했다. 국내 여행한 곳 중에서 경치가 아닌 사람과 도시에 감동을 받은 첫 도시였다.
수도권에서만 방황하던 내게 이 여행지는 곧 작은 사랑의 도시가 되었다.
어렸을 때, 아직도 그 뉴스가 기억난다. 그리고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 덕에 한번 더 기억 속 상기된 그 사고.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 중앙로역.
대구 지하철 참사. 참으로 처참했던 사고다. 실종자까지 약 200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말 모든 참사가 그러하듯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뭘 잘못했고, 이런 사고를 어떻게 막을지 끊임없이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사고를 연결하는 뉴런, 즉 기억의 이미지와 장소가 필요하다.
근데 지금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비는,
거의 이 정도면 산속에 갔다 놓은 게 아닌가 싶다.
물론, 2015년 즈음
추모의 벽을 지하철 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12년이 지나서 말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노력하고 있는 점은 높이 사주고 싶다. 정말 이런 노력이라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대구시는 잊지 않을 것임을 잘 알지만, 우리는 조금 더 진정성 있게 우리 국민들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나아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용산참사, 연평도, 세월호, 천안함 등
우리의 별이었던 그들을 어떻게 기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 마음에 진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 보다 몇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면 어떨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