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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처음 입어본우리 옷, 한복

이상하게도 나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복을 제대로 입어보았다.

by 서정

"한복; 한국의 의류",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입은 한복은 일본에서였다. 그리고 아마 거의 살면서 입을 일이 한 손안에 꼽힐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오히려 생각해 보니 일본에서 정말 많이 입었던 것 같다.


일본은 정말 전통을 어떻게 생활에서 녹여내고 이어가는 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 같다. 소위 말하는 일본의 전통옷 '기모노'를 생활 속에서 편하게 입는 '유카타'로 변형시키고 매년 뜨거운 여름 열리는 불꽃놀이 속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각각 색채와 개성을 뽐내는 옷을 입고 도시에 모여 밤하늘의 꽃을 구경한다. 나 또한 그 수많은 임파 속에 섞여서 유카타를 입고 놀며 일본의 전통을 즐기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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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본의 여름에 유카타, 겨울과 봄에 있는 졸업식과 성인식에서는 기모노를 입는다. 일본의 성인식은 매년 1월의 둘째 주 토요일로 약속된다. 왜냐하면 그 주말에 동네 친구들과 같이 모여 각 대학으로 흩어지기 전, 또는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비록 성인이 된 이후에 일본에 온 나는 참여해보지 못했지만 일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할머니나 어머니 등의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기모노나 자신만의 기모노(주로 후리소데라고 하는 종류)를 한 벌 장만하여 입곤 한다. 이렇게 1년에 전통옷을 적어도 한 번이라도 입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유카타를 입으면서 든 생각은 한복에 비해서 치마의 폭이 작아서 지하철을 타거나 거리를 다닐 때 불편함이 비교적 적다는 것이긴 하였다. 우리도 한복의 치마의 부피를 조금만 개선한다면 다 같이 한여름에 입고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제 다시 한복이야기로 돌아와, 내가 입은 그날은 나의 대학 졸업식이었다. 일본은 졸업식에 다들 기모노(이 때는 하카마라는 종류)를 입고 온다. 근데, 나의 선배들이 그러했고 나도 그러하듯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20대의 절반을 보냈지만 내가 한국인임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기모노를 입을 수도 있지만 입었다면 몸이 아닌 마음이 불편한 옷이 될 것임을 나 스스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나는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으로 이루어진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시절을 보냈기에 그 마무리는 더욱 우리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의 종로 쌈짓길에 있는 한복집에 가서 나만의 한복을 맞추었다. 맞추면서 내 마음대로 조금 개량도 해보았다. 한복을 입고 '졸업식장 - 학교 - 연구실 - 기숙사 - 공항'의 대장정의 여정을 행군해야 했기에 일단 길이는 과감하게 복숭아 뼈가 보이도록 잘랐다. 그리고 고무로 만든 힘든 버선 신이 아니라 한복과 깔맞춤을 한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풀리면 매번 묶어야 하고, 우리 할머니가 아니면 묶을 수 없던 고리도 과감하게 지우고 이쁜 초록색 브러치를 달았다. 비단으로 만들어 세탁소에 매번 맡겨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전부 다 폴리 소재로 만들었다. 물빨래로 마음껏 입을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멋진 선택이었다. 이렇게 우리 삶의 방식에 맞추어 조금씩 바꿔나간다면 1년에 다 같이 한복을 입고 파티를 즐기는 Korea Hanbok Party~의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게 될 것이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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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미있었던 건, 나와 함께 우리 학과의 또 다른 유학생이었던 말레이시아 친구 '소피아'의 복장이었다. 이 친구는 항상 수업을 들으러 다닐 때 머리카락만을 가리는 히잡을 일상복 위에 써야 했었는데 졸업식에는 전체(풀)로 말레이시아 스타일로 입고 왔었다. 그 친구가 그렇게 입으니 정말 그 나라에 대한 느낌을 한눈에 받을 수 있어서 마지막에 인사하며 정말 좋은 기억을 남겼다. 우리 한복도 그 친구에게 좋은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바랬다.


저 한복의 이후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은가? 사실 졸업 이후 벌서 3년 차이다. 근데 그동안 한 번도 입지 못했다. 사실 입을 날과 기회들이 없었달까. 결혼이라도 하면 웨딩촬영에서 쓰나 했는데 나는 아직이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바로 '당근'을 통해서 말이다. 재미있게 거래하시는 분은 한 딸의 어머니셨다. 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결혼도 하는데 그래도 한국사람이니 예쁜 한복 하나 쥐어 보내고 싶으셨다고 한다. 근데 나의 졸업사진이 맘에 드셨나 보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나의 옷이 이제 미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나의 추억이 깃든 한복이라 거기서도 새롭고 즐거운 추억들을 나의 옷이 경험하길 기도했다. 사연 없는 물건은 없기에 항상 이런 작은 거래에도 나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게 참 재미있는 일이다.


여러분의 한복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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