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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히콥스토스 Aug 18. 2024

엄마 나 남자 좋아해(2)

“너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니?” 엄마가 물었다. “아니 얼마 전에 헤어졌어.” 나는 하필이면 이 시점에 이런 질문을 하는 엄마가 미웠다. “왜 헤어졌는데?” “그냥 내가 걔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더라고.” 엄마는 내 대답을 듣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깨고 엄마가 나에게 던진 말, “너가 여자가 좋지 않은 건 아니고?”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꺼냈지만 이십여 년간 같이 지낸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채기는 쉬웠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미 머릿속이 폭발 직전이었던 나는 엄마의 직구를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몇 년간 해오던 거짓말이 귀찮아졌다.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그 땡글한 엄마의 두 눈이 얇게 흔들리며 눈 사이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엄마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했지만, 20년 넘게 키워온 아들이 게이임을 알게 되는 순간 정신이 온전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엄마는 다음 말을 꾹 참은 채 그저 말갛게 차오르는 눈물을 눈에서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엄마의 자랑스러운 아들은 말 한마디로 엄마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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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의도치 않은 커밍아웃을 한 이후, 엄마는 나한테 더 이상은 연애 얘기를 묻지 않았다. 내가 연애를 하고 있는지도, 내가 아직도 남자를 좋아하는지도 엄마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마치 나의 커밍아웃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엄마는 억지로라도 연애 주제를 피하려는 듯 우리가 이야기를 할 때면 의도적으로 우리의 대화가 연애 얘기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집에 들어가지 않을 때에도 엄마는 그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가 방에서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어도, 엄마는 내 방에서 새어나가는 통화소리마저도 듣지 못한 척했다. 인터넷을 통해 커밍아웃 후 부모님과의 관계가 회복 불가 수준으로 치달았다는 얘기까지 접했던 나는 엄마가 나와 연을 끊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때로는 아들의 성적지향을 애써 무시하려는 것 같은 엄마의 태도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데도 10년이 걸린 만큼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달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커밍아웃을 한 지 2년 정도 되던 해에, 나는 엄마와 같이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항상 패키지여행에만 익숙하던 엄마에게는 거의 첫 해외자유여행이었다. 엄마와 단 둘이 가는 첫 여행이자, 내가 모든 걸 다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여행이었기에 잔뜩 긴장한 채로 떠난 여행이었다. 엄마와 일주일 동안 한시도 빠짐없이 붙어있어야 했으니 이건 유치원 이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엄마와 나는 꽤 잘 어울렸다. 부모님과의 여행 시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한 글들을 철저히 숙지하고 갔던 나는 엄마에게 최고의 여행을 선물해 주었다. 엄마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패키지여행에만 익숙했던 엄마는 자유여행의 자유로움에 흠뻑 취하게 된 것이다. ‘해외여행 = 관광지 중심의 투어’로 자리하던 엄마의 인식에서 벗어나 직접 그 나라 사람들이 숨 쉬는 거리를 몸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자유여행이 엄마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여행은 참 신기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에 스며들어 평소와 다른 음식, 날씨, 문화에 동화되다 보면 사람의 기분과 생각마저 달라지게 된다. 이번 여행이 꽉 닫혀있던 엄마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며 나에 대한 마음이 활짝 열려있는 지금, 엄마에게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해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케비치 앞 해산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저녁을 거하게 먹은 우리 둘은 숙소까지 소화를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숙소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엄마와 저녁 바다 모래사장을 걸었다. 어둠 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앞 뒤로 움직이며 부서지는 파도가 음악처럼 잔잔히 울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의 분위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엄마에게 문뜩 물었다. “엄마는 내가 연애하는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아?” 엄마는 별 말이 없었다. 조금 더 걷다가 말을 이었다. “ 나 지금 1년 넘게 사귀는 남자친구 있어.” 이번에도 엄마는 별 말이 없었다. “별로 안 신기해?” “그럴 것 같았어.”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너가 집에 잘 안 들어오는 날이 많잖아.” 역시 엄마도 짐작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는 안 궁금해?” 엄마는 관심 없어 보이더니 이내 어떤 놈을 만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식으로 남자친구에 대해 물었다. “얼마 전에 미대 졸업했고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야. 나 엄청 좋아해 주고 집에 돈도 많고 사업하는 사람이야.” 최대한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끔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남자친구의 특성들을 늘어놓았다. 계속 앞을 보며 걷던 나는 엄마의 표정이 궁금해져 슬쩍 옆을 돌아봤다. 엄마는 무표정으로 계속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근데, 얼마 안 가서 헤어질 것 같아.” “왜?” “그냥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생각하기에 형편없는 구석이 많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해변을 따라서 걸을 뿐. “그래서 엄마한테 소개해주지는 못할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 엄마는 이번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해변을 따라 수여분을 더 걸었다. 그러다 엄마가 입을 뗐다. “왜 엄마한테 소개도 못 시켜주는 사람을 만나고 그래? 왜 그런 놈을 만나?” 엄마는 여자가 아닌 남자를 만나는 연애도 불만스러웠는데 기껏 만난다는 놈이 엄마한테 소개도 시켜줄 수 없는 놈이라는 게 속상했나 보다. “그렇게 됐어. 몸도 엄청 좋고 엄청 잘생겼거든.” 그 뒤로 엄마는 별 말이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해변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며 숙소를 향해 마저 걸었다. 커밍아웃 이후 나의 연애와 관련된 첫 이야기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엄마가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이 대화를 계기로 나는 엄마에게 조금씩 나의 연애상태와 관련된 힌트를 주기 시작했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면 엄마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만난 지는 얼마나 됐는지. 엄마가 궁금해하는 눈치는 없었지만 나는 꾸준히 엄마에게 나의 연애사를 알렸다. 나도 모르게 내가 엄마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먼 훗날의 어느 하루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효과는 아주 탁월했다. 처음에는 얘기를 꺼낼 때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듣던 엄마가 점점 나와 눈을 맞추며 얘기를 듣기 시작했고 나의 연애 얘기에 조금씩 질문도 더해가며 일방향적인 정보전달에서 이제는 쌍방향의 대화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와 잘 맞는 파트너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다. 관계를 시작할 때부터 엄마에게 이 친구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해주었고 엄마는 이 친구에 대해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년간 이어온 나의 사전작업들이 빛을 발한 것 같다. 거기에 더해, 그 당시 내 남자친구는  미래가 유망한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어른들에게 예의를 아주 잘 차리는 사람이었기에 나도 엄마에게 자랑하듯 내 남자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엄마에게 처음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 순간을 나도 무척이나 꿈꿔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와 내 남자친구, 그리고 엄마가 함께하는 식사시간이 마련되었다. 난생처음으로 내 남자친구를 엄마에게 소개하는 자리이니 만큼 나의 긴장도는 정점을 찍었다. 또 엄마 편에서 생각해 보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들의 애인과의 식사시간이 얼마나 떨렸을까.(나는 형이 한 명 있는데, 형은 한 번도 엄마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인생 처음으로 소개받는 아들의 애인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니, 엄마가 나를 낳으면서 상상이나 해봤을 장면일까 싶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식사시간은 매우 유쾌했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으며, 재미있는 대화로 가득했다. 한눈에도 엄마가 내 남자친구를 상당히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식사자리가 마무리되고 나는 남자친구와 짧은 인사를 한 뒤 엄마와 같이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는 내 남자친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상도 참 좋고 애도 잘 컸더라. 말할 때도 어른스럽고 배려심도 있어 보이고.” 한창 말을 하던 중 엄마가 말을 멈췄다. 엄마가 조금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엄마는, 참 좋은 짝인데 이 친구가 여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어.” 생각이 많아지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만남의 결론을 그렇게 내린 엄마가 야속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나를 받아들였을지언정 차별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본인 아들이 힘들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 그 말속에서 마저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우리 엄마는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 엄마의 뺨을 후드려치는 쿨한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아들의 외국인 남자친구와 같이 여행을 다니는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어떻게든 열심히 소통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나는 엄마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지난 8년간 엄마의 시간은 어땠을까.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그걸 머리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음 깊숙이에 자리하게 하려 했던 엄마의 지난 8년. 나는 어디에 가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엄마는 세계에서 제일 멋진 엄마라고. 나와 엄마의 관계는 아직도 성장진행 중이다. 남자친구와의 결혼 계획까지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의 나와 엄마는 내가 처음 게이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던 15년 전의 나와 엄마의 관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를 존경하고 아끼고 사랑한다. 그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우리 엄마에게 나는 오늘도 전화를 건다.


“엄마, 뭐 하고 있었어?”

“나? 그냥 집에 있었지~ 밥은 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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