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전쟁

by 온리원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아니지만, 다 큰 성인이 길거리에서 소리 내어 운다는 것을 인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이의 복잡한 심정은 알 것 같았지만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펑펑 울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인자는 단이를 다독이며 무리 지어 모여 있는 직원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단이가 직원들에게 이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아 차 한잔 마시자며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그 사이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을 찾은 단이는 인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어~ 근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니지? 캐모마일 어때?"

단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자는 심신 안정에 좋다는 캐모마일 차를 두 잔 주문했다.


"놀라셨죠? 죄송해요. 저도 주책맞게 왜 그렇게 펑펑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한테 지우 하원 부탁하고 남편 올 때 까지만 봐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좀 전에 지우 아빠 와서 이제 가신다고 전화하신 거거든요. '엄마 없어도 할머니랑 잘 놀았다, 저녁밥도 먹였다' 일상적인 얘기 하시다가 '일 하면서 육아하기 힘들지?' 하시는데 울컥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마음이 엄청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신체적으로도 피곤하고, 지우랑 떨어져 지내는 것도 힘들고, 업무도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있고..... 일과 가정을 동시에 돌본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주무관님은 어떻게 둘이나 키우고 계세요?"

다시 눈가가 촉촉해지려는 단이는 겨우 인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으로 감정을 다스렸다.


"어떻게 키우긴~ 날마다 전쟁이지. 아마 다들 마찬가지일 거야."

마침 주문한 캐모마일 차가 나왔다. 은은하고 향긋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인자는 말을 이었다.

"나도 처음 복직했을 땐 워킹맘은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애도 잘 키워야지, 살림도 잘해야지, 직장에서도 인정받아야지, 어디서든 완벽해야 될 것만 같아 힘들었었는데 지나고 보니 다 쓸데없는 걱정이고 내 욕심이었더라고..... 조금 서툴러도, 부족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었는데 스스로 그래야 한다고 규정지었던 것 같아. 그게 욕심이지."


'욕심'이라는 단어가 단이에게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가정과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뭐든 잘 해내고 싶은 욕심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하니 감정의 혼란스러움이 조금 이해가 됐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다른데 남들하고 비교하다 보면 불안해지거든.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게 맞나, 잘하고 있는 건가 확인받고 싶기도 하고...... 자기만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쉽게 휘둘려서 결국 모두 행복하지 않게 될 거야."

'자기만의 가치관이라......' 단이는 인자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럼 지금 주무관님은 그 가치관을 만들어 놓으셨어요?"

"사실 나도 이걸 깨달은 지는 얼마 안돼서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어. 그런데 하나 분명한 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서 내 삶에 언제나 1순위는 남편도 아니고, 애들도 아니고 나야. 호호호~ 남들이 들으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심신의 상태에 따라 남편이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늘 기분 좋은 컨디션과 건강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남편과 싸워 짜증이 가득한 날이나 몸이 피곤한 날에는 별 것 아닌 일로 지우에게 화를 냈던 경험이 있어 인자의 말에 단이는 크게 공감이 됐다.


"그리고 꼭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 가사와 육아로부터 해방되는 나만의 시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나면 삶의 활력소가 되거든. 그래서 나는 집에는 얘기 안 하고 연차 내서 미용실도 가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혼자 카페에서 책도 읽고, 가끔 그렇게 보내. 그렇게 충전하고 나면 남편도 애들도 사랑스러워 보이더라고."

인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이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복잡했던 머릿속에 남은 '가치관'과 '나만의 시간' 두 단어와 함께.


단이와 차를 마신 뒤 콜택시를 부른 인자는 남편에게 카톡을 남겼다.

[복직한 직원이랑 차 한잔 마시고 이제 택시 불렀어. 금방 갈게~]


10분 만에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인자는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라 잠들었을 두 아이를 생각해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

당연히 꿈나라일 줄 알았던 민서와 민찬이 현관에 들어서는 인자를 향해 반갑게 뛰어온다.

거실에 널브러진 장난감과 책들,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씻지 않은 것 같은 꾀죄죄한 남매의 몰골, 이 밤중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남편 상태를 보고 있으니 회식 자리에서 얼마 마시지도 않은 술이 확 깨는 듯했다.


평온한 밤을 기대했던 인자는 정반대의 상황을 마주한 지금 '욱'하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지만 말투에는 온갖 짜증이 뱄다.

"뭐 하느라 지금 이 시간에 설거지를 해? 애들은 왜 아직도 안 재우고? 씻기긴 했어?"

가방만 벗어두고 책과 장난감들을 정리하는 인자의 눈치를 보며 설거지를 마친 상태가 정리를 거든다.


"애들 저녁 먹이고 치우고 있는데 갑자기 과장님이 전화하셔서 내일 아침에 국장님께 보고할 자료 만들라고 하는 거야~ 자기가 알아서 보고한다고 자료 필요 없다고 퇴근할 때까지 별 말 없더니 왜 갑자기 만들라는 건지...... 기껏 만들어서 보냈더니 내용이 어쩌네,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해라~ 1시간 넘게 작업하느라 이제 치우고 설거지한 거야. 보고서는 보고 할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어휴~ 우리 과장님 진짜 별로야."

상태는 늦은 시간에 설거지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해명했지만, 인자에겐 변명처럼만 느껴졌다.


같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지만 가정보다는 조직이 우선인 것 같은 상태에게 인자는 항상 불만이었다. 상태가 보고서 작업을 하는 동안 두 남매가 방치되었을 걸 생각하니 화가 났다.

"조직에 충성하지 마. 조직이 자기랑 우리 애들 생각해 줘? 이제 팀장으로 승진했으면 내 새끼들 먼저 챙기면 안 돼? 내가 자기처럼 허구한 날 회식하는 것도 아니고, 송환영회 참석하는 게 고작인데 이런 날도 내가 집에 와서 뒤치다꺼리 다 해야겠어? 나도 좀 쉬고 싶다고!!"

인자는 결국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울분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신입 시절, 인자는 같은 부서에 배치된 인연으로 연인이 된 상태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언제나 다정다감해 가정을 우선 할 것 같은 최고의 남편감이라 여겼다. 그러나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어느 부서에 배치되어도 잘 적응하는 장점이 언제부턴가 조직에 충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6급으로 승진해 팀장이 되었지만.


인자도 조직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두 번의 육아휴직이 불리하게 작용해 동기들보다 승진서열이 밀렸다. 근평에 유리한 시청으로 이동하지도 못하고 마음에 안 드는 박 과장과 계속 근무를 해야 하는, 가뜩이나 속상한 상황에 집안마저 내 편이 아니란 생각이 드니 답답함과 억울함이 올라왔다.

눈치 빠른 민서와 민찬은 화장실로 향해 시키지도 않은 양치질을 스스로 한다. 부모의 갈등 상황에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싶어 발견한 생존본능이랄까?


"아이고~ 인자한 인자 씨가 안 인자하네? 얘들아, 엄마 힘드니깐 빨리 자러 가자. 얼른 옷 갈아입고 씻어~ 내가 애들 재울게. 그리고 이번 주말에 혼자 휴가 다녀와~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인자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상태는 언제나 그렇듯 별 일 아닌 것처럼 넉살 좋게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불편한 상황을 훈훈하게 마무리 지어주는 상태가 이렇땐 고맙기도 하다.


인자는 늘 자신만이 희생하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한편으론 나를 생각해 주는 상태도 같이 희생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니 '날마다 치르는 전쟁 속에서도 행복이란 꽃을 피울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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