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전쟁 2

by 온리원

"아아아악~~~~!!!!"


민서와 민찬을 카시트에 앉히고 시동을 켠 인자는 핸들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 소리라기엔 괴성에 가까운 악이다. 그동안 쌓인 설움과 울분이 전날밤의 일과 겹친 데다 아침부터 두 아이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감정의 화산이 폭발한 것이다.


남편 상태는 이미 출근했고, 언제나 그렇듯 두 아이 등원 준비는 인자의 몫이다. 인자는 씻고 나와 출근 준비를 하면서 소음을 일으켰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보다 늦게 잠든 탓에 여전히 꿈나라에 있다. 화장대에 앉아 파우더를 두드리며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던 아가씨 시절을 떠올렸다. 내 몸뚱이 하나만 건사하고 출근하던 때가 좋았는데 말이다. 이젠 화려한 액세서리도 사치요, 풀메이크업에 사용했던 화장품들도 기본 화장만 하니 필요가 없어졌다.


겨우 깨웠지만 잠에 취한 두 아이의 옷 입히기는 또 다른 난관이다.

"나 이거 안 입을래~ 핑크치마~"

공주캐릭터에 푹 빠진 6살 딸 민서는 요즘 들어 부쩍 치마를 고집한다.

"오늘은 안돼~ 어린이집에서 숲 체험 간다고 원복 입으라고 했단 말이야~ 핑크치마는 내일 입자~"

"싫어~! 오늘 입고 싶단 말이야!"

누굴 닮았는지 자기주장이 뚜렷한 민서는 고집하던 핑크치마를 기어코 들고 와 입는다. 아직 옷 입기가 서툴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를 보니 인자는 부아가 치민다.

"꼭 오늘 입어야겠어? 다른 친구들은 다 원복 입고 올 텐데?"

"가져가면 되잖아! 혼자 갈아입을 수 있어!"

똑 부러진 딸이다. 기특하면서도 가끔은 버거운 민서가 예쁘지만 힘겹기도 하다.


결국 원복은 종이가방에 따로 담아 가져가기로 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더니 매일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다. 민서와의 핑크치마 실랑이를 마치고 민찬을 준비시키려 하는데 맙소사!!

웬일로 민찬이 이불에 실수를 했다. 두 돌이 조금 안되어 기저귀를 뗐고, 두 돌 무렵 딱 한 번 실수를 한 게 전부인 민찬이 천재가 아닐까 여겼는데 5살짜리가 이불에 지도를 그리다니! 축축하게 젖은 이불을 보니 인자는 화가 났다. 천재가 아닌 평범한 여느 아이들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실망감이었을까, 아침부터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일거리가 주어져서일까? 민찬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텐데 인자는 화가 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겠지만, 전날밤 상태에게 언성을 높여 아이가 놀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니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어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빨래통에 집어 놓고 민찬의 옷을 갈아입혔다. 거실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늦었다!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을 할지도 몰라 서둘러 아이들의 가방을 챙긴다.

"얘들아, 늦었어! 빨리 신발 신어!"

차키와 백을 챙긴 인자는 현관문 앞에서 또 두 아이의 모습에 속이 터진다. 숲체험을 가야 하는 민서는 운동화 대신 핑크치마에 어울리는 하얀 구두를 신었고, 민찬은 좌우가 바뀐 신발을 신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인자는 민서의 운동화를 원복이 담긴 종이가방에 대충 집어넣고, 민찬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머피의 법칙인지 늦어서 마음이 분주한 날은 엘리베이터도 꼭 안 잡힌다.



괴성을 지른 인자의 속은 후련했다. 하지만 이내 밀려오는 후회.

'도대체 아이들 앞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엄마의 낯선 모습에 놀란 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자의 눈치만 살폈다.

복잡한 감정과 생각은 모든 것을 원망스럽게 만들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부터 언제나 직장이 우선인 남편, 애초에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자신까지도 말이다.


워킹맘에게 직장과 가정은 매일 전장을 치르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긴장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삶 자체가 전쟁터란 생각을 하니 갑자기 암울해졌다.

'둘도 이렇게 벅찬데, 우리 팀장님은 도대체 셋을 어떻게 키우고 계시지?'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마다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정팀장이 존경스러워진다.


억울함과 분노, 후회와 죄책감.

인자는 복잡한 감정의 보따리들을 가득 안고 전쟁터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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