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

by 온리원

두 아이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른 것에 대한 후회와 아이들에게 정서적 불안감을 안겼다는 죄책감, 엄마로서 자격이 없는 것 같단 실망감까지 인자의 부정적인 감정은 출근길 복잡한 교통상황만큼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출근시간 5분 전에 어린이집 벨을 누르게 되어 지각은 면했다. 직장 내 어린이집의 존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날이다. 아무 일이 없었던 듯 민서와 민찬을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사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 인자는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캐비닛에서 서류들을 꺼내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했지만 커져버린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키러 화장실로 향하다 복도에서 정팀장과 마주쳤다.

"인자씨,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모른척하고 지나가 주면 좋으련만, 팀원의 울상인 표정을 정팀장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리라.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빗장은 쉽게 풀린다. 정팀장의 아는 체에 인자는 가슴을 누르고 있던 단단하고 묵직했던 돌덩어리가 사르르 모래로 부서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정팀장은 인자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고 복도를 등져 난간을 바라보게 몸을 돌렸다.

"하아.... 팀장님. 저는 아무래도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자괴감에 빠진 인자는 울음을 참고 눈물을 닦았다.

"아침에 운전하고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이성을 잃고 미친년처럼 소리를 질렀어요. 애들이 놀라서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일이고 육아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너무 속상해요. 같이 돈 버는데 육아는 다 제 몫인 것 같아 남편한테도 서운하고요. '욱'하는 건 미성숙해서라는데 전 아직 멀었나 봐요. 사실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괴성에 저 자신도 놀랐어요. 내가 왜 이러나 싶어서.......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정팀장은 인자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였다.


"잘하고 있는데 뭘~ 인자씨,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엄마의 역할도, 팀원의 역할도."

정팀장의 짧은 한 마디에 인자는 큰 위로를 받았다. 사르르 부서진 모래가 모두 날아간 것만 같았다. 크게 한숨을 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인자씨도 엄마가 처음이잖아.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어. 아이를 낳았으니 엄마가 된 거지. 아이들에게 좀 미안하면 어때? 천 번을, 만 번을 미안해도 우린 엄마야. 아이들도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처럼 엄마들도 마찬가지야. 경험을 하지 않고 어떻게 성장을 하겠어~ "

'성장이라.......'

인자의 뇌리에 '성장'이라는 단어가 꽂혔다.

"인자씨는 오늘 성숙의 과정을 한 단계 통과한 거야. 죄책감으로 위축돼서 실패라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어~ 애들 앞에서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 나는 왜 그랬을까? 내 마음은 뭘 원했을까? 자신을 살펴보고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 거야. 다음에도 똑같은 일로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말이야."

정팀장의 말에 인자는 생각이 깊어졌다.

'성숙해지기 위해 성장해야겠구나. 내가 미성숙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여기자.'

"잘하고 있어! 힘내!!"

남들이 '힘내'라고 했으면 전혀 공감되지 않았겠지만, 직속상관의 응원이니 눌렸던 자존감이 회복된 것만 같았다.


인자는 그토록 자신을 화나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으니 파티션 건너편이 자리인 단이로부터 온 메시지가 컴퓨터 화면에 떠 있었다.

[어제 잘 들어가셨죠? 좋은 말씀 감사했어요~ 저도 꼭 나만의 시간을 갖고 제가 먼저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려고요~]

그제야 인자는 전날 밤, 자신이 카페에서 단이를 위로한 일이 생각났다.

'나 자신도 부족함 투성인데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조언했담~' 워킹맘 선배로서 뭔가 당차고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만의 철학을 얘기한 게 순간 부끄러워졌다. 정팀장처럼 그냥 잘하고 있다고 응원이나 해 줄걸 그랬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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