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

by 온리원

'나만의 시간이라......'

지우가 태어난 이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게 언제였던가 생각해 본 단이는 복직하기 전에 유진을 만나러 춘천을 다녀온 날이 떠올랐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복직 전에 평소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하고 싶은 일도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결국 유진과 보낸 시간이 전부였다.


단이에겐 늘 지우가 함께 있었기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는 건 생각조차 못한 일이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들이 육아에 지쳐있을 단이를 배려해 나가서 쉬고 오라고 등 떠 밀어도 껌딱지처럼 엄마만 찾는 지우를 차마 두고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야, 나 이번 주말에 나만의 시간을 좀 가져도 될까?"

단이는 정훈에게 물어보면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나만의 시간? 뭐 하게?"

"아직 특별히 정한건 없어~ 뭐 할지 생각해 봐야지."

"언제는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더니 갑자기 왠 나만의 시간?"


평소 다정한 정훈이기에 바로 그러라고 허락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의 답변에 단이는 기분이 상했다.

"복직하고 나니깐 여러가지 생각들 때문에 머리도 복잡하고 가슴도 답답하고 그래서 혼자 시간 보내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리프레쉬 하고 싶어졌어."

"지우는 어떡해? 자기만 찾는데....... 하루종일 둘이 있는건 자신 없는데......"

정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라 단이는 실망스러웠다.


"그냥 몇 시간만 바람쐬고 올게. 그럼 됐지?"

하룻밤 자고 온다는 것도 아니고, 남도 아닌 자기랑 똑 닮은 딸과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게 자신없다니...... 겪어 보지도 않고 부담부터 느끼는 정훈이 얄미웠다.


폭염으로 아침부터 무더운 토요일.


인자는 상태에게서 얻은(?) 휴가를 쓰기로 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아이들이 먹을 아침밥을 위해 잔멸치와 김가루를 넣어 주먹밥을 만들고, 상태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놓았다. 먹을 것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아이들은 면을 좋아한다고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 먹일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점심도 밖에 나가 사 먹든가 포장해 올걸 알기에 한 끼라도 집밥을 먹이고 싶어 준비한 것이다.


주중에 화장으로 지쳤을 피부도 휴식을 하라고 기초 화장품만 바른 뒤 옷도 가장 편한 것을 골라 입었다.

"나 갔다 올게~"

인자의 발걸음은 원피스 만큼이나 가벼웠다.

10시에 예약한 미용실에서 짧은 단발 c컬 펌을 하기로 했다.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만큼 기분 전환에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어깨까지 내려와 늘 묶고 다녔던 머리카락들이 싹둑싹둑 잘려 나가자 인자의 마음 속 깊이 응어리졌던 울분들도 함께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머리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짧아진 머리카락 끝에 로드가 하나씩 말리니 어떤 스타일로 변신을 하게 될 지 기대가 됐다.


"음료는 뭐로 드릴까요? 커피, 녹차, 오렌지 쥬스가 있습니다~"

인턴처럼 보이는 직원이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음료를 주문한다. 펌이 끝나면 다음 코스로 카페를 갈 예정이라 마시고 싶은 커피는 잠시 참아본다.

"오렌지 쥬스 주시겠어요?"


산뜻하게 바뀐 헤어스타일로 미용실을 나선 인자는 근처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쇼윈도에 늘어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발길을 끌어 들어간 카페 내부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돋는 포토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인자는 모처럼 갖는 나만의 시간을 우아하고 분위기 있게 즐기고 싶어 커피가 포함된 브런치세트를 주문하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집에서 챙겨온 책 한 권을 꺼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상태가 언젠가 인생책이라고 언급한 <생각의 각도>가 궁금해 가지고 온 것이다.


표지를 넘기자 첫 장 가운데 새겨진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생각의 각도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문장이 인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몇 번을 반복해 읽었다. 남편이 자신과는 다르게 어려운 상황들을 유쾌하게 넘기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게 생각의 각도가 다르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에 앞서 목차를 살펴보고 어떤 내용들일까 책장을 휘리릭 넘겨 보았다. 먼저 읽은 상태가 곳곳에 밑줄을 치고 생각들을 메모한 종이들을 보며 인자는 남편의 또다른 모습을 알게 됐다. 그러다 노란란 색연필 위에 분홍 형광펜까지 칠해 강조한 문장을 발견했다.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끔 가족을 '귀한 손님처럼' 여기는 것이다.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곧 떠나게 될 손님,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못 만날 귀한 손님처럼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인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상태의 온화한 모습이 타고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가정의 평화(?)를 위해 노력을 한 것임을 이 문장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같이 돈 벌면서 나만 희생하고 손해본다고 투정부리고 불만을 가졌던 게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나는 우리 가족을 귀한 손님처럼 여긴 적이 있었던가? 남편을, 민서와 민찬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소유물 취급하진 않았었나?'


나만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가족의 소중함이 참 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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