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엄마

by 온리원

요 며칠,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와 날마다 작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춘기 딸이 엄마에게 관심과 사랑,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는 건 잘 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옷가지들, 책상 위에 널브러진 잡동사니, 침대 매트와 이불 사이에 숨겨놓은 과자 봉지까지… 잔소리거리들이 눈앞에 먼저 들어오니 고운 말이 나갈 리 없다.


게다가 조금 지청구만 들어도 금세 삐져버리고, 그 표정이 오래가니 내 인내심도 바닥이 드러나 결국 사자후가 터지고 만다.


지난 주말, 지인 가족과 속초로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날 아침, 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은 올해 마지막이 될 모래놀이를 마음껏 즐겼다.
백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성을 쌓고, 모래를 퍼서 서로 장난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놀고 난 뒤 옷과 신발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차에 올랐고, 다행히 집으로 가는 길도 막히지 않아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2박 3일 장거리를 운전한 나에게 저녁을 차릴 기운은 없었다.
마침 여동생이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러 간다기에 우리도 합류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귀찮아졌는지 딸이 가지 않겠다고 번복했다.
방문을 열어보니,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 위에서 이불을 덮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잘 털어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는 분명 조금은 묻어 있을 텐데— 그 옷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다니!


“나갔다 오면 옷부터 갈아입어야지! 모래가 남아 있을 텐데 그걸 입고 그대로 침대에 들어가? 생각을 해!”


차분하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딸이 약속을 뒤집은 게 미웠던 건지 결국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딸은 입을 삐죽 내밀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또 삐진 것이다.
나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딸 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00야, 엄마가 예쁘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화내면서 말해서 속상했지? 미안해. 저녁 같이 가기로 했다가 안 간다고 해서 엄마가 좀 짜증났던 것 같아.”


사과의 말이 끝나자마자 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아이는 자신이 왜 속상했는지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서로 마음을 내보이니 금세 오해가 풀렸다.


“우리 주말에 데이트할까?”
“응! 그럼 화원 갔다가 카페 가자!”


그렇게 갈등은 일단락되었고, 우리는 주말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데이트 당일, 나는 아침부터 몸이 무겁고 아팠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아침밥상을 정리하는데 식탁 위엔 딸이 가지고 놀던 털실 뭉치와 내가 선물한 책이 아직도 놓여 있었다.
치우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그대로 있자, 결국 다시 짜증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어? 한번 말했을 때 치우면 이런 일 없잖아!”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날에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이 서글펐다.
딸도 시큰둥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남편의 무심한 한마디가 기름을 부었다.


“그 기분으로 데이트 가겠어?”


“아니.” 딸의 짧고 차가운 대답.

순간, 나도 다시 욱했다.

“됐어. 가지 마! 안 가!”


하아… 딸과의 사이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결국 딸은 기분이 상해 집을 나갔고, 나도 속상해 침대에 누워 버렸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더 아팠다.


잠시 후 딸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놀이터에 있다고 했다.
오라고 하니 싫다고 하고, 나도 괜히 반대로 나가겠다고 말해버렸다.
딸이 원하는 말이 뭔지 알면서도 차갑게 군 내 모습이 미웠다.


두통이 몰려오고 몸살 기운까지 겹쳐 결국 잠이 쏟아졌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딸은 내가 안방에서 자고 있는 줄도 몰랐던 듯하다.


저녁 무렵, 조용히 방으로 들어온 딸이 나를 꼭 안았다.

“엄마, 미안해…”

나도 딸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 냈어.”


앞으로 나의 숙제는 [다정한] 엄마가 되는 일이다.
곰곰이 돌아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지점은 대부분 ‘스스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한다.

육아의 최종 목표가 자립이라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엉성함과 느림을 감수해야 하는데—
나는 그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지쳐 있을 때 다정한 목소리를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다정함은 습관이기도 하지만, 체력이고 마음의 여유이기도 하다.
나를 돌보는 일이 결국 아이에게 더 따뜻한 엄마를 건네는 길이라는 걸 요즘 들어 더 절실히 느낀다.


[다정한] 엄마.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딸이 가장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자,
나도 꼭 닿고 싶은 나의 다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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