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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Dec 22. 2021

우(友)들의 반란

『규중칠우쟁론기』를 통해 살펴본 벗들의 모습

  고려 건국(918)부터 16세기 말까지의 중세 국어 시기에는 우리 국어사(國語史)에 획을 긋는 훈민정음 창제(1443년)가 있었다. 훈민정음 창제 및 반포(1446)는 조선 후기의 우리 문학에 새로운 물길을 내게 되었고, 그 중 하나의 물줄기는 바로 ‘내간체(內簡體)’라고 하는 궁중의 궁인이나 사대부 부녀자들이 사용했던 문체가 사용된 ‘내간문학’이었다. 사실 한글이 나타나기 전인 조선 전기에도 ‘기류작품(妓流作品)’이라 하여 기생들이 시조를 짓곤 했었지만, 부녀자들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한글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부터이다. 이번에 살펴볼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도 조선 후기의 부녀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고전·한글 수필인데, 부녀자가 거처하는 규중에서 바느질 용품 일곱 가지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소위 규중 칠우(閨中七友)는 부인들의 방 안에 있는, 일곱 벗이다. 글하는 선비는 필묵과 종이, 벼루를 문방사우(文房四友)로 삼았으니, 규중 여자인들 홀로 어찌 벗이 없으리오. 이러므로 바느질을 돕는 것을 각각 이름을 정하여 벗으로 삼았다. 바늘을 ‘세요(細腰) 각시’라 하고, 자는 ‘척(戚) 부인’이라 하고, 가위를 ‘교두(交頭) 각시’라 하였다. 또 인두를 ‘인화(引火) 부인’이라 하고, 다리미를 ‘울(熨) 낭자’라 하며 실을 '청홍흑백(靑紅黑白) 각시‘라 하고, 골무를 ’감투 할미‘라 하여 칠우로 삼았다. 규중 부인들이 아침에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나면 칠우가 일제히 모여 함께 의논하여 각각 맡은 소임을 끝까지 해냈다.   


       


  이 고전수필의 전반부에서 규중 부인의 일곱 벗, 즉 규중칠우는 서로 자신의 공을 자랑하기에만 바쁘다. ’자‘에 해당하는 척 부인은 옷감을 마름질하려면 자신이 꼭 있어야 한다고 하며, ’가위‘에 해당하는 교두 각시는 마름질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옷감을 자르려면 자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밖에 세요 각시, 청홍흑백 각시, 감투 할미, 인화 부인, 울 낭자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공치사를 늘어 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는 규중 부인이 이들의 대화에 개입하여 아래와 같은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게 된다.     

     


 규중 부인이 말했다. “칠우의 공으로 의복을 만드나, 그 공이 사람의 쓰기에 있으니 어찌 칠우의 공이라 하리오.”하고 칠우를 밀치고 베개를 돋워 깊이 잠이 들었다.



 규중 부인은 일곱 벗의 공치사를 끝내게 하고, 무엇보다 칠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공이 있다는 인간 중심의 논리로 칠우의 불평과 원망을 촉발하고 만다.      

    


 척 부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매정한 것이 사람이고 공 모르는 것은 여자로다. 의복의 옷감을 자를 때는 먼저 찾고 이루어 내면 자기 공이라 한다. 게으른 종의 잠을 깨우는 막대는 내가 아니면 못칠 줄로 알고, 내 허리 부러지는 것도 모르니 어찌 야속하고 화나지 않으리오.”     


 세요 각시 한숨짓고 말하였다. “너는 물론이거니와 나 역시 일찍이 무슨 일로 사람의 손에 보채이며 요망하고 간악한 말을 듣는가? 뼈에 사무치게 원한이 맺힌다. 나의 약한 허리 휘두르며 날랜 부리 돌려 힘껏 바느질을 돕는 줄을 모르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나의 허리를 부러뜨려 화로에 넣으니 어찌 통탄하고 원통하지 않으리오. 사람과는 극한 원수이지만 갚을 길이 없어 이따금 손톱 밑을 찔러 피를 내어 원한을 풀면 조금 시원하다. 그러나 간사하고 흉악한 감투 할미가 만류하니 더욱 애달프고 못 견딜 일이로다.”     



 허리가 가늘고 날씬한 세요(細腰) 각시는 손톱 밑을 찔러 사람에게 복수할 기회조차 차단하는 골무인 감투 할미를 못견디게 못마땅해 한다. 사람에 대한 각골통한(刻骨痛恨)의 마음을 품은 것으로 보아 이미 세요 각시는 규중 부인의 친구가 아닌 듯하다. 이렇듯 언제나 우리의 곁에 두고 있다고 하여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이 나의 친구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운함과 불만이 쌓이기 쉬운 법이다. 칠우가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반란(?)의 조짐을 보일 때 옆에서 자던 규중 부인이 문득 깨어나 칠우에게 말한다.          


“칠우는 어째 내 허물을 그토록 말하느냐?    

 

감투 할미가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며 말했다.

”젊은 것들이 망령되게 헤아림이 없어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재주가 있으나 공이 많음을 자랑하여 원망스러운 말을 하니 마땅히 곤장을 쳐야 합니다. 그러나 평소 깊은 정과 저희의 조그만 공을 생각하여 용서하심이 옳을까 합니다.“          



 여기에서 감투 할미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세요 각시의 말대로 간사하고 흉악하여 규중 부인에게 아첨하는 간신배로 보이는가?  아니면 주인인 규중 부인의 서운했던 말에도 탄식하지 않고, 칠우와의 갈등을 중재하려는 지혜로운 처세술인가? 예나 지금이나 모시었던 주군(主君)을 거역하고 도리어 칼끝을 들이대는 현상이 심심치 않다. 부패한 주군이기 때문에 청산의 대상이 된 것이라면, 마땅히 주군의 관계에서 벗어난 후 외부에서부터 메스(mes)를 집어 들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침선(針線) 도구들이 반역 모의로 치닫기 전에 서둘러 사죄를 한 감투 할미의 말을 들은 규중 부인은,     



“할미 말을 좇아 용서하겠다. 내 손부리 성함이 할미 공이니 꿰차고 다니며 은혜를 잊지 아니하겠다. 비단 주머니를 지어 그 가운데 넣어 몸에 지녀 서로 떠나지 아니하겠다.” 

    


라며, 세요 각시(바늘)와는 다르게 감투 할미(골무)를 총애하겠다는 암시를 준다.   

        

  『규중칠우쟁론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변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문학적으로 승화킴으로써 당시 사대부 여성들의 섬세하고 뛰어난 문학적 감각을 가전체(假傳體) 문학의 형식으로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기류작품(妓流作品)이 주로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것에 비하여 이러한 내간체 수필은 세태에 대한 풍자, 사람의 역할과 도리 등 그 주제가 지엽적이지 않아 봉건 사회 속에서 변화해가는 여성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고전수필의 의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이를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가에 있을 터인데, 오늘 우리의 생활에서도 문방사우(文房四友)나 규중칠우(閨中七友)와 같은 사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선비에 한정되었던 네 친구나, 부녀자들만의 일곱 벗을 넘어서서 오히려 AI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은 우리와 가깝다 못해 항상 붙어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심지어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재성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한데, 요지는 오늘날 그 누구도 이들을 ’벗(友)‘이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과 거의 하나가 된 이들이지만 친구라기 보다, 우리를 중독에 빠지게 하고 머지않아 정복해 버릴 것만 같은 악몽을 꾸게 만드는, 한때 친구라 생각했던 존재의 반란이라고나 할까?     


 문득 어제와 오늘 만나고 연락하며 지낸 나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본다. 이들은 과연 일까, 세요 각시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체를 끝까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감투 할미일까? 

 갑자기 씁쓸한 기운이 오감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이,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떫은 녹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가 없다.      



         

선비들의 친구였던 '문방사우(文房四友)'.  나의 친구(?)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그리고 무선 이어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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