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義兵)이란, 국가가 외침으로 인해 위태로울 때 정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웠던 민병을 말하며, 창의군(昌義軍)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성이 착한 것인지, 힘이 없어서 착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분석하는 것조차 의미없이 여겨 지지만 우리 민족은 유구(悠久)한 의병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조선의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및 한말의 항일의병은 대표적인 우리나라 의병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짙은 쑥색 반팔티나 후드티를 입고, 격앙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절제된 냉정함으로 연일 전세계에 호소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의 모습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가 친밀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은 단지 나 뿐일까?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2022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지도자로 벌써부터 자리매김 했다.
아마 그러한 생각은 필자 뿐이었던지 젤렌스키는 사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우리나라에게까지 최근 무기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했는데, 우리로서는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에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의협심으로 우크라이나 의용군이 된 우리 국민들도 있고, 이 전쟁 때문에 유가를 비롯한 물가가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기에 더이상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번에는 젤렌스키의 음성에서 느껴지는 다급함과 간절함, 그리고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란 말이야!’라고 절규하는 그의 거친 울대와 같은 심정으로 이름 모를 누군가 써 내려간 『한말(韓末)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저 왜노(倭奴)란 것은 섬 가운데 조그만 오랑캐로서 천지간에 사특한 기운을 타고난 것들이로되, 오늘날 우리 나라의 난신적자(亂臣賊子)와 부화뇌동하여 기어이 우리 종묘 사직을 전복(顚覆)하고, 우리의 산과 바다를 제 자원으로 만들며, 우리의 민생을 종으로 만들려 하는도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작은 일에 속하는 것이니, 심지어 남의 정신을 파괴하고 남의 정치와 법마저 변경하기를 감히 기도하는도다.
과거 중국이나 고려 사람들은 일본인을 ‘왜노(倭奴)’라고 낮잡아 불러왔다. 위 격문의 시작은 왜노들에 대한 경멸과 적개심을 난신적자(亂臣賊子), 즉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라는 오물이 묻은 보자기에 싸는 것으로 하여 궁극적으로 이들이 조선의 주권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시 이 격문을 쓴 문장가가 법 공부를 한 사람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오늘날 헌법에서 국가의 3요소로 말하는 영토, 국민, 주권이 모두 위 두 문장안에 포함되어 있어 단순히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신(大臣)직을 맡은 자는 적의 앞장이 노릇 아니하는 자 없고, 상투 자르고 얄궂은 말하는 놈은 모두 왜놈의 배짱을 가진 자들이다. 비록 천벌에는 오랫동안 빠졌으나, 어찌 잠깐인들 사람의 베임에서 벗어나랴!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도 나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나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껄끄러운 상대로 여겨지기도 한다. 격문의 문장가는 애초에 일본의 본성을 생래적인 악(惡)으로 규정한 뒤, 당시 일본의 편에서 나라를 통째로 넘기려던 매국노들이 조정에서 판을 치는 것에 한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의지에 가로막혀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장가는 비록 군사가 적고 무기가 빈약하다 하더라도 죽음을 각오한 백성들의 정신력이 수치상의 군사력을 이길 수 있다고 아래에서 힘주어 말하고 있다.
비록 무기가 정예하지 못하다 하나, 맹자의 말과 같이 덕이 있으면 몽둥이를 가지고도 진․초(秦楚)의 갑옷 입은 군사를 칠 수 있나니, 금성탕지(金城湯池)를 잃었다 하지 말라. 뭇 사람의 애국심이 성을 이룰 수 있으리라. 관동과 영남의 의병들이 이미 연락의 형세를 이루었고, 구미의 강국들이 이미 연맹해 줄 기미가 있도다. 저주하여 남에게 뒤지지 말고, 다행스러운 이 때에 맞춰 힘을 다하자. 궁벽하고 먼 고을은 기회를 보아 토벌할 수 있으니, 큰 성과 도시에 힘을 합쳐 함께 멸할지라.
이쯤되면 구한말(대한제국의 시기. 1897년에서 1910년까지를 이른다.)의 상황이 지금 우크라이나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모든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 열세라 하더라도, 결사항전을 한다면 금성탕지(金城湯池)는 곧 우리들의 애국심으로 축조될 수 있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Kiev)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단결로 건재하게 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구미의 강국들이 이미 연맹해 줄 기미가 있도다’라고 격문에서 말하는 내용은,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에서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을 볼 때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의병활동은 민족의 항전의지를 만방에 보여주는 효과는 있었으나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의 투쟁도 러시아라는 거대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유사점을 또한 안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문장가는 격문의 마지막에서 다소 극단적인 외침으로 최후의 호소를 하게 된다.
제각기 반드시 죽겠다는 뜻을 분발하여, 일에 뒤떨어진 죽음을 뉘우치지 말라! 조선에 살고 조선에 죽어 아버지와 스승의 교훈을 저버리지 말라. 조선에 살고 조선에 죽어 아버지와 스승의 교훈을 저버리지 말라. 적을 죽이거나 적에게 붙거나 결단코 조종(祖宗)의 정한 상과 벌을 따를 것이라. 격문이 도착되거든 풀이 바람을 따르듯 하라. 복심(腹心)을 헤쳐 널리 고하노라.
전쟁은 무엇일까? 죽거나 죽이거나, 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이 글 전체를 놓고 보면 문장가는 전쟁의 본질을, 국가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던 사상가였음이 분명하다. 사상가는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이성적인 사람이어야 할텐데, 이 격문(檄文)은 100여년 후 먼 타국의 대통령 젤렌스키의 다급함과 격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격문(激文)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