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의 편지
미국의 여류시인이자 작가인 조이 데이빗멈(Joy Davidman)은 ‘그’가 집필한 서적을 탐독하였고, ‘그’의 생각과 사상을 흠모하였으며, 결국 ‘그’와 결혼하고 말았다. 어린 두 아들을 양육하고 있던 조이는 미국에서 방탕한 남편과 이혼하고 영국으로 이주하였는데, 이에는 쉰 살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으며 옥스퍼드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그'의 영향이 컸다.
활달하며 명민한 그녀의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편지를 받는 그의 손은 기대감으로 언제나 떨렸고, 한평생 잔잔한 호수와 같았던 그의 내면은 조이가 불규칙적으로 던지는 조약돌로 인해 기쁜 파동으로 가득 차곤 했다. 영국으로 이주했던 조이에게 영국 정부가 더 이상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자, 그는 조이를 돕기 위해 형식적으로 그녀와 혼인신고를 하였지만 이내 조이는 골수암 판정을 받게 된다.
이를 기화로 이들의 사랑은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하였는데, 조이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식 결혼을 한 '그'는 바로 기독교 변증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 영문학자인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이다.
루이스는 냉철한 이성과 풍부한 지성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니아 연대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등의 명저를 집필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성인 조이가 세상을 떠나자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신앙에 회의를 갖고 슬픔에 잠겨 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방황은(?) 그의 에세이 『헤아려본 슬픔』에 잘 나타나 있다.
타임지로부터 “의심할 바 없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라는 찬사를 받았던 루이스는 아내를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신’에 대한 서운함을 『헤아려본 슬픔』 곳곳에 배치해놓고 있다.
이 작품에는 루이스 자신이 바라본 조이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하나님의 함의(含意)를 분석해보며 이성적·논리적으로 현황을 해석하려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성경의 작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루이스는 스스로 나름 ‘신’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전문가라 자부하였는데, 조이와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은 그의 변증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자 고통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도 여러 종류의 다양한 이별들이 산적해 있다. 부모와의 이별, 친구와의 이별, 자녀와의 이별 등... 그 어느 것 하나 정도를 매길 수 없는 상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배우자는 가장 밀접하고도 농밀한 시간을 보낸 대상이기에, 그 상실감은 다른 이별을 능가할 수 있다.
단순히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고 해서 공허함도 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루이스의 결혼생활은 약 3년에 불과했지만, 오십년 그의 인생을 전복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조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신’에 대한 신뢰를 차근히 쌓아갔고 이를 명저들로 남겨 독자를 기쁘게 하였다. 예정된 난관을 안고 신혼생활을 시작한 루이스와 조이는 골수암의 치료를 위해 소망을 가지고 함께 기도했고, 일시적으로 크게 호전되어 그 기도는 응답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골수암은 재발했고, 그 이듬해인 1960년 조이는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루이스도 3년 후에 그녀를 따라간다. 이들의 짧은 사랑과 안타까운 마지막은 영화 ‘섀도우 랜드(Shadow Lands, 1995)’에 잘 표현되어 있다.
(1) (실화) 나니아 연대기 작가의 믿을 수 없는 실제 이야기 (영화리뷰/결말포함) - YouTube
『헤아려본 슬픔』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을 토로하고, ‘H’ 라 작품에서 칭하던 조이에 대한 특별한 감정과 그리움을 나타낸 루이스의 독백이라 할 수 있다.
루이스 또한 ‘N.W. Clerk’ 라는 가명으로 이 책을 출판하였는데, 아마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와 슬픔에 집중하는 것을 반기지 않아서였으리라. 하지만 루이스는 이를 결코 숨기고만 싶지도 않았다.
구약성경에서의 욥(Job)과 같이, 이해되지 않는 고난에 대해 누군가가 설명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명징한 표현과 지적인 논증으로 그동안 신을 ‘이해’ 해왔던 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듯하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이지만, C.S. 루이스는 이를 통해 결국 신을 또다시 이해하고야 말았다. 우리는 신과, 그분의 뜻을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