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죽여라

-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by 이재명

브라질에서의 나비 날갯짓 한번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


-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 -



‘나비효과’라는 용어를 다들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라렌츠(Lorenz, E. N.)가 주창한 이론으로,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이라는 수학 내지 과학이론에 해당하지만, 사회현상은 물론 우리의 실생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하고 현실적인 개념인 것이다.


필자는 인과관계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이 나비효과에 많은 관심이 있어, 관련된 영화나 소설 등을 탐독했던 경험이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학교 진학이나 취업, 결혼 등과 같이 인생의 큼지막하고 통과의례격의 변수가 아닌, 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선택과 현상이 오히려 위와 같은 인생의 대표적인 변수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누구와 결혼하느냐는 나비효과 이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인생에서 가장 큰 변수에 해당하게 됨을 본능적으로 알기 마련이다. 직업에 있어서의 선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무심코 여겼던, 그리하여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작은 선택들로 인해 미래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는데,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제목의 2004년에 제작된 미국 영화이다. 영화에서 대학생인 주인공 에반은 어린 시절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일기를 쓰게 된다. 그 일기장에서 시·공간 이동의 통로를 발견하여 과거로 돌아가 상처의 원인이 되는 경험들을 바꾸어 놓지만, 주인공의 인위적인 과거 조작은 오히려 더 악화된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과연 주인공이 과거의 선택을 달리함으로써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 초조하게 만들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면모를 물씬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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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바꾸면...모든 것이 바뀐다!' 위 영화와 같은 사유는 우리들을 두렵고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비는 죽어야 한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20년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본 필자는 당시 ‘선택’에 대한 부담감이 심하였다. 이 영화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중차대한 결정은 물론이고 오늘 집에서 밥을 먹을지, 외식을 할지 또는 친구를 오후에 만날지 저녁에 만날지에 따라 나의 미래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근주자적(近朱者赤) 근묵자흑(近墨者黑)’은 가장 기초적인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나쁜 친구를 사귀면 그와 같게 되는 것이고, 먹는 양보다 움직임이 덜한다면 우리 몸의 세포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는 현상, 즉 비만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문제는 선택에 따른 결과에 개연성이 보이지 않는 경우이다. 통찰력의 영역을 벗어나고부터는 이제 하늘의, 신(神)의, 운명의 권한이 미치게 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래 운명은 우리를 주관하였지만, 우리가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의 범위로 진입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이 미지의 영역에서 마지막 결정체로 남게 되는 것은 ‘두려움’ 말고 무엇이겠는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 및 현상이나 자신의 판단이 앞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점을 보러 다니고, 주역(周易)과 명리학(命理學)에 관심을 보이며 우주와 나 자신을 연결하여 하나로 본다는 신박한 논리에 빠져드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나비를 죽이는’, 다시 말해 나비가 날갯짓을 하든 꼬리를 치든 우리의 평점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비결을 두 가지 제시해 본다.


첫째는 인생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운전할 때 가끔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색이 되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 태연히 건너시는 어르신을 본다. ‘이미 살 만큼 살아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는 나를 치면 네가 손해일까, 내가 손해일까?’라는 무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차들은 경적도 울리지 않고 대기하기 마련이다. 어르신들은 희로애락을 모두 무표정으로 수렴해버리며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비의 날갯짓을 가볍게 무시하신다.


둘째는 미래를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운명은 애원한다고 해서 결코 우리를 불쌍히 여기거나 봐주지 않는다. 운명을 상대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 외에는 없다. 물론 언제나 운명을 바꾸거나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패배하여 쓰러져 있는 우리에게 운명은 경의를 표하며,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우리의 두려움과 의지만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는 승리를 했음에도 치욕을 느낄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처럼 우리도 나비를 죽이려 할 때, 그 치욕의 향을 맡은 나비가 이내 날갯짓을 멈추고 운명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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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운명에는 정면승부가 답이다. 당당한 태도만 잃지 않는다면, 비록 지더라도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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