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가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

우리 모두 벌 받았다.

by 이재명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은, 어찌보면 가장 안정적이고 평안한 인생을 보장해줄 수 있는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한 기여를 하지 않더라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가성비 좋은 자녀의 특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선택으로, 유교적 가치관으로 보자면 극심한 불효를 한 처녀 총각을 이번에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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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996년과 1968년에 개봉한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 포스터. 어느 쪽이 몇 년도 영화인지는 설명이 없어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대표적인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화, 뮤지컬, 오페라 등으로 변형되어 왔는데 특히 영화로 상영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계적인 스타 배우를 배출하기도 하고, (각각 다른 시기에 제작된 영화마다) 특유의 영상미를 자랑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풋풋하고 왠지 설레는 감성을 선사하기도 한다. 영화는 열정의 도시 베로나에서 서로를 원수 가문으로 여기고 있는 몬태규가(家)캐플릿가(家)가 날선 대립을 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몬태규가의 로미오는 캐플릿가에서 주최한 무도회에서 줄리엣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캐플릿가의 줄리엣 또한 로미오를 사랑하여 이들은 양가의 부모 몰래 로렌스 신부의 주례로 순식간에 혼인식까지 거행하고 만다는 것은 희곡에서부터 널리 알려진 줄거리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 Juliet 1996 명장면 - YouTube



필자는 이 영화를 통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가치는 상실한 지 오래고, 몬태규가와 캐플릿가와 같이 상대를 척결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는 우리 여당과 야당을 떠올린다. 작금의 상황은 끝없는 혈투를 벌이던 두 가문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이로 인해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과 같이 이 나라 또한 망조(亡兆)의 표지(標識)를 보이는 것이리라.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면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였다. 내 마음이 끌린다면 비록 원수의 가문일지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충동적이고 경솔한 젊음의 치기(稚氣)라고 보기엔, 그 반대는 삶의 원동력의 전력을 차단하는 절연체와 같이 비겁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의 정치관을 그대로 물려받으며, 상대편의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갈지라도 애써 마음을 다잡는 효심을 발휘하고 있다. 부모의, 집안의 정치관은 나의 사고와 개성을 압도하며 우리나라의 정치에서는 절대로 불효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올 수 없도록 구조적인 피임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에게는 취향과 선호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리하여 어떤 인물에게는 마음이 끌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터인데, 정치색에 있어서는 우리 부모의, 집안의 그 사람만을 내가 좋아해야 하고, 지지해야만 한다. 조선 시대의 혼례처럼, 나의 의사는 온데간데 없고 예식에서 처음 본 그 사람을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것이다. 이는 비단 부모와 집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해당할 수 있다. 내가 지지하는 인물과 정파(政派)에게도 부족한 점과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대편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마리 앙투아네트식 발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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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날 처음 만났다고 하는 조선시대의 혼례식 장면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로서 프랑스 대혁명 당시 참수형을 당하였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면, 혼인주례를 하였던 로렌스 신부의 기지(機智)로 줄리엣은 부모가 강요하였던 패리스와의 정략결혼을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망을 위장한 줄리엣을 보고 로미오는 독약으로 목숨을 끊었고, 이내 깨어난 줄리엣은 죽은 로미오를 보자 단도로 가슴을 찔러 그를 따라가게 된다. 결국 몬태규가와 캐플릿가는 두 젊은이의 비극적인 희생을 겪고서야 화해를 하게 되었고, “모두가 벌 받았다!”라는 베로나 영주의 마지막 한탄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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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영상 11분30초부터 베로나 영주가 한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두 가문은 화해를 하게 되는데...



원수 가문의 사람을 사랑했던 로미오와 줄리엣. 이들은 젊은 연인의 전형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며, 심지어는 적대 관계에 있는 세력일지라도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일 수 있다. 우리가 여전히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둘이 동시에 죽거나 그 다음에는 내가 죽게 되는 것 외에는 떠올릴 수가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시 쓰여야 한다.



[전체요약 / 로미오와 줄리엣]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 오해받는 가슴 아픈 사랑영화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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