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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Mar 23. 2020

미션 클리어

성취감을 느껴보자


아이를 낳고 이십사 시간을 애와 뒹굴다가 단 한 시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 이미 등단한 작가들에게 십 년을 써야 뭘 써야 될지 알게 된다는 말을 듣고는 비현실적 년수에 그냥 실소를 머금으며 십 년이면 강산이 바뀌는데 그제야 뭘 쓰게 될지 않다고? 너무하네! 하며 속으로 꿍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났다.

글쓰기는 내가 뭘 못해서, 뭘 안 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줄 아는 정도의 경지! 에 이르렀다.

그리고 육아 또한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몸부림을 쳐도 아이는 제갈 길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내 글 하나도 완성 못하고 애도 내 맘대로 교육이 안 되는 상태.

시작은 우울하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더 우울하다.


하지만 이런 일상이 계속되는데도 내가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성취감!


매일 집콕이라 십 분도 지루한 마당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보자며 등교를 안 하는 애를 붙잡고 공부를 시켜보려고 했지만

당연히 안된다.

그때 아! 얘가 많이 컸지! 하며 생각난 유물급 조립식 장난감(네 살 때 엄마 아빠 욕심으로 사서 엄마 아빠가 직접 조립했다가 다시 부순)!

손 힘이 상당히 필요한 조립법 덕분에 애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더욱 지금 딱 필요한 장난감이다!


우리 초딩은 칠 년 만에 보는 새로운 장난감을 보고 '"와! 이거 얼마야? 이거 비싸겠는데!"를 외치며 창고를 뒤져 꺼낸 엄마의 수고에 화끈하게 화답을 해 준 다음 빛의 속도로 와르르 부품을 쏟고 부품 하나를 딱 끼워보더니

정말 그 보드라운 손으로 힘 한번 주고는

"잘 안 껴지네. 나 안 해~!"

쿨하게 가버렸다.


십 년을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이 있는 세상을 알려주고 싶은데 우리 초딩은 일초도 애를 안 쓴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때면 한 오분 정도는 뇌가 통제불능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감나무 밑에서 떨어지는 감만 기다리는 사람으로 자라나서 내가 따주는 감만 먹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면서 '절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놔둘 순 없지! 나도 그렇게 내 노년을 보낼 생각이 없다!' 거기에 '나는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더해지면


이걸 해야 다음이 있는 거야

잘할 수 있어

같이 한 번 끼워볼까?

너는 열한 살이 이걸 못 끼우냐!?

등등의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육아 십 년 차, 뇌를 다시 급하게 현실로 데려왔다.

'내가 꺼냈지...... 쏟은 건 내가 아니지만 이왕 쏟은 김에 하나 조립해 볼까.... 일초만에 포기할 정도로 엄청난 힘이 필요한가 정말?' 꽤 힘이 필요하긴 했다. 그런데 두세 개 끼워보니 요령이 생겼다. 힘이 좀 들지만 끼워질 때 나는 딸깍 소리가 선물같이 짜릿하다.

이거지! 이게 성취감이지. 안 아프고는 알 수 없는 거지. 아픈 건 잠깐이지만 좋아진 기분은 꽤 오래간다. 미래를 예측하고 분노했던 뇌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이십 분 정도 조립을 하고 점심을 준비하러 부엌에 갔다.

달그락거리며 살림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아까 주어졌던 미션 클리어!


우리 초딩이 내가 조립하다 만 장난감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조용히 앉아 끼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콧노래까지 흥얼댄다. 딸깍! 딸깍!

우리는 둘 다 성취감에 사로잡혔다.

우리초딩의 외침!

엄마! 나 되게 많이 만들었다!

제법 장난감 높이가 높아졌다.


콧노래 소리가 더 커지고

지지고 볶는 내 요리 소리도 더 커지고

나에게는 딸깍! 소리보다 조금 더 큰 성취감!


매일매일 생각지 못했던 성취감 덕에 이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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