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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Apr 02. 2020

윷놀이를 하자는데 윷이 없다

배움이란 끝이 없다

아들과의 집콕, 하루 중 반은 각자 시간을 보내고 밥 먹는 시간 빼고 잔소리하는 시간 빼고 보면 삼십 분 정도 같이 격하게 놀 때가 있다.

처음 보는 데다 싸우는 장면 또는 거칠거칠한 그림이 들어있기까지 한 책을 읽어주겠다고 하거나 영화를 보자고 하거나 뭐 숨겨둔 장난감이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아들이 먼저 놀이를 제안하고 내가 수락하는 쪽이다.


내가 제안하면 협상의 달인 녀석이 조건을 붙이는데 거의 황당하고 자기중심적인 조건을 갖다 붙이므로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볼 만화책 다 보고, 아들이 놀이를 제안했다.



엄마! 윷놀이하자!



당황하지 않는다. 윷은 없다. 말도 없다. 잡지에 부룩으로 껴들어온 윷판만 있다.

하루에 겨우 삼십 분, 함께 놀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윷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경우 나는 천재적인 순발력으로 얼토당토않은 걸 잘 갖다 붙인다. 아마 아들의 협상능력은 날 닮은 것이 아닐까 싶다.



오케이!



나는 태연하게 대답하고 부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은 나무 작대기 네 개를 잽싸게 챙겨 얼른 한 면에 엑스표를 세 개씩 그었다. 내가 윷을 만드는 모습을 보더니 아들이 말을 챙겨 왔다. 말은 아이언맨 레고 인형 여덟 개.

이런, 이 아이가 말이 네 개씩 다 달라야 한다는 걸 모르나 보다 하며 내가 말했다.



어머, 이거 말이 다 똑같이 아이언맨이다. 내 것 세 개는 다른 색 인형으로 바꿔줘.



그나마 나한테 준 아이언맨 인형에 회색이 하나 들어있었으므로 한 개는 내 앞에 놓고 나머지는 밀어냈다. 아들이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이거 다 달라.



나는 '요 우기기 대장! 너 또 우기는 거냐? 어서 다른 색 인형을 찾아와! 이번엔 내가 너를 가르쳐줄 테다. ' 하고 속으로 다짐하며 설명을 했다.



뭐가 달라. 네 게씩 달라야 하는데 회색 하나만 다르잖아.



아들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본다



엄마, 엄마 꺼는 구형이고 내 껀 신형이잖아.



이건 또 무슨 소리. 너만 아는 구형 신형을 나보고 구분하라고? 그걸 구분해가며 윷놀이를 하라고? 구형, 신형 슈트 구분하는 법을 배우기 싫다는 나의 내적 몸부림이 막 시작되며 짜증이 나려는 순간



신형은 모양이 세모고 구형은 동그랗잖아!



아! 쉽다. 동그라미랑 세모! 눈을 껌뻑거리고 코딱지만 한 동그라미랑 세모를 찾았다.

그랬다. 구형과 신형에는 엄청난 규칙이 있었다.

나는 아이언맨 아크레이터 모양이 구형은 동그랗고 신형은 세모낳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배움이란 이렇구나. 너무 어려울까 봐 지레 겁먹으면 짜증 나고 화나고, 쉬우면 재미있는 거구나. 나도 너 수학 가르쳐줄 때 화 안 낼게.






그리고 우리는 삼십 분 알차게 놀았다. 내가 만든 윷은 소리도 크게 안 나고 밑에 뭐 깔 필요도 없고 아주 좋다. 짤그락 짤그락 바닥으로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막대기 소리가 경쾌하기까지! 아들이 가져온 말도 쓰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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