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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Apr 05. 2020

숨기고 싶은 이야기

우리도 싸우며 큰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내 기억 중 왜곡이 없다고 자부하는 기억이 몇 있다. 그중 하나는 엄마와 아빠가 둘이 문 닫고 다툴 때 했던 내 상상. 분명히 내 얘기를 하고 있어. 내가 오늘 뭘 잘못했지? 누가 내편을 들고 있을까? 안방 문만 닫히면 했던 생각들.






본인은 무심코 던졌겠지만 나에게는 철퇴 같아 순식간에 소설 한 묶음 분량의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남편의 말. 혼자 케이오패 당해 눈물 찍으며 침대에 쓰러져있다가 더 그러고 있으면 영영 못 일어날 듯하여 산책이라도 나가려는데 곱게 앉아 숙제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아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여유 없는 나는 그 눈은 외면하고 뛰쳐나가 집에 있는 남편과 전화 통화로 한바탕 하고 돌아와 또 방문 잠그고 몇 마디 실랑이를 하고 나왔다. 여전히 아들은 곱게 앉아 숙제하는 시늉 중. 순간 그 아이의 눈에서 읽히는 것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었다. 웃음이 나올 뻔했다.


심각하게 나에 대해 자책하며 사십 년을 잘 살건가 못 산건가 고민하고 있는데 너는 이런 나의 고통을 백만분의 일도 이해할 리가 없지. 삼십 년의 격차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 아빠가 방문 닫고 한 얘기들도 나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으리라는 확신이 들며 나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구나. 또 어린 우리는 우리의 안위가 참 중요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아직 어린 나와 더 어린 아들을 이해해주기로 했다.

아들에게 내가 듣지 못했던 말을 개운하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완벽치 못한 사람이고 언젠가는 엄마의 환상이 깨질 것이므로 지금의 적당한 솔직함이 나쁘기만 할까.


아이를 가만 지켜보다가 불렀다.


"엄마한테 와봐......"


안 온다.


"너 때문에 속상한 거 아니야. 어서 와봐."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한달음에 일어나서 내 앞으로 왔다. 나는 귓속말로 솔직하게 고백했다.


"아빠가 미워서 그랬어."


아들 입가에 환한 미소가...... 어찌나 환하게 웃던지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아이는 만족스러워하며 나를 꼭 껴안아주고는 싸우지 말라고 무슨무슨  조언을 한참 해주고 숙제는 팽개치고 놀기 시작했다.


낮에 쓴 소설은 다 꾸기고 찢어버린 오후, 아들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다가와 내 팔을 툭 치고는 몸을 베베 꼬며 말한다.

"미워도 아빠한테 잘 좀 해줘."

"왜?"

내 질문에 아이가 답했다.





"아빠잖아."


대답으로 거창한 이유를 바랐는데 참으로 더 거창한 이유였다. 나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기억이 왜곡되지도 않고 선명하지도 않게 일상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길 바라면서......


"걱정하지 마. 이제 안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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