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오를 나무들
등단 못한 엄마가 동화 쓰는 것을 태어나서 십 년 동안 쭉 봐온 아들은 엄마가 쓰고 그린 그림책은 쳐다도 안 본다. 엄마가 해결하지 못한 것, 엄마가 못 오르는 나무 옆에 서서 왜 거기는 못 오르냐고 묻는다.
쓰고 뽑고 읽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와중에 주워들은 글감을 줄줄 읊으며
"그때 그건 다 썼어? 그 이야기 말이야. 마지막이 좀 별로였어. 그건 언제 다 쓸 거야?"
"......."
"좀 긴 글을 써봐. 그래야 재미가 있지."
"....... 쉬운 일이 아니야."
"안 쉬우니까 엄마 보고 하라고 하지. 주인공이 죽은 거 고쳐. 행복하게 사는 걸로."
"....... 잎싹(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은 죽었잖아."
"잎싹은 초록머리를 남겼잖아. 그러니까 괜찮은 거지. 엄마 주인공은 아무도 안 남기고 죽었잖아."
"......."
글 벗님들 합평보다 더 뼈 있는 소릴 가끔 한다.
그런 아들이 안 오르는 나무는 수학 학습지. 나도 너는 왜 못 오르냐고 이것저것 따져보고싶기는 하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참는다.
평소에 공부하는 옆에 앉아있는 편은 아니나 며칠 밀려서 양이 많기도 하거니와 단계가 올라간 터라 응원을 해주려는 마음으로 옆에 앉았는데, 아들이 제안을 한다.
"나는 문제를 풀 테니 엄마는 시를 써. 내가 제목 줄게."
"......"
아들이 종이에 시를 쓰라며 제목을 적어줬다.
제목은 <몬스터>
연필을 잡고 잠깐 고민을 하다가 쓰기 시작했다. 옛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들이 벌써 생각이 났냐며 핀잔을 주고는 저도 문제를 막 푼다.
<몬스터>
옛말에
집터를 잘못 잡으면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말이 있다
걔는 '몬스'에 집을 짓더니
일이 얼마나 안 풀렸는지
괴물이 되었다.
시를 짓고 나서 속으로 낄낄대고 있는데 아들이 못 참고 기웃거렸다.
가릴 수도 없는 노릇.
치사하게 다 풀면 보여준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시를 보여줬더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묻고는 낄낄댄다.
"이야, 이거 말 된다. 엄마 시 잘 짓네!"
나는 칭찬 한 번 듣고 좋아서 수학 학습지고 뭐고 그냥 말장난에 푹 빠졌다. 이 웃긴 말장난 나무에 올랐는데 무엇 때문에 학습지 나무에 올라갈까.
우리는 한참을 그러고 놀았다.
못 오를 나무던 오를 필요 를 못 느끼는 나무던 언제나 거기 있겠으므로 우리는 그 옆에 있는 다른 나무들도 이리저리 구경하며 조금 낮은 것부터 조금 재밌어 보이는 것부터 올라가 봐야겠다. 아니, 지금 그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