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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Apr 09. 2020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나의 진심

내 마음이 진심이었는지는 내가 안다. 어릴 땐 모든 것이 진심이었다.






고등학교 때 참 좋아하던 친구의 얼굴을 진심을 담아 그려 선물한 날, 친구는 심드렁한 얼굴로 그림을 보더니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사회에서 만난 그 친구는 치아교정기를 끼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친구의 이빨이 가지런해지고 있었고 나는 그제야 알았다. 치아가 다 보이게 활짝 웃는 모습을 그린 내  그림의 최후가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내 진심은 거의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

결국 나는 가면을 꺼내 썼다. 좋아도 안 그런 척 싫어도 좋은 척, 그 가면은 '예의'라고 불리기도 했다.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고 또 내가 알아낸 만큼의 정보로 그에게 어울리는 말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넌 참 솔직해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나의 노력보다 내 진심이 너무 팔딱팔딱 잘 뛰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난 최선을 다해 가면을 더 잘 붙였다.


진심을 숨긴 내가 좋지 않은 결과들을 맞닥뜨리지 않는 것을 기뻐하고 편안해하고 안심하고 익숙해지고 이것이 드디어 나의 살아가는 기술이 되었다고 자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나 또한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의'라는 예쁘고 곱고 단정한 말 뒤에 숨어있는 그이의 진심이 참으로 궁금한데 그것을 결단코 나는 볼 수 없음에 속이 쓰라렸다. 어른들의 세계다. 진심을 알 수 없는 세계. 모르고 있다가 문득 숨이 콱 막히는 세계. 그래서 아주 작더라도 진심을 보았을 때 눈물이 나버리는 세계.





어른의 세계에서 잠시 빠져나와 아이의 세계로 가는 것. 그 공간이 나의 숨구멍이다. 내 진심을 꺼내 종이에 적는 일 그것이 없다면 그야말로 숨구멍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아이. 진심을 가끔 꺼내놔도 좋을 아이에게

오늘 진심을 털어놨다.


"엄마 사는 재미가 없어. 흥이 안나."


한 십 분이 지났을까? 아이가 내 옆으로 왔다.


"엄마, 살아 있는 게 재밌는 거야! 우리 살아 있잖아! 왜 재미가 없어? 난 재밌는데?"

아이는 나에게 핀잔과 훈계가 섞인 말을 늘어놓고 흥얼거리며 가버렸다.

결과가 좋지 않다.


결국 진심은 종이 위로 간다.

그리고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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