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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Apr 16. 2020

감사함을 먹고 크는

회복력

아들이 자기 전 질문을 한다.

"학교폭력 신고하면 어떻게 돼?"

이런 뜬금없는 질문에는 중립을 아주 잘 유지해서 대답을 해야 한다. 아들의 화법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결론 먼저 내린 후 질문.

"어떻게 되는 건 없어. 폭력이 오고 가면 신고를 하고 잘잘못을 가려보겠지만 결국 내 몸은 내가 지켜야 돼. 너무 힘들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내가 지키는 게 먼저야."

침묵이 흐른다. 열한 살, 엄마 보호 아래 자란 아이 머릿속에서 무슨 계산이 이뤄지는지 전혀 모르는 채 기다려야 하는 시간.

아들이 생각을 정리했는지 말한다.

"ㅇㅇ가 내 목을 움켜쥐고 하지 말라고 했어. 엄청 아팠어. 신고해야겠어."

ㅇㅇ는 아들보다 한 살 어린 덩치 좋은 동네 말썽꾸러기다. 일 년 전쯤 그 아이가 축구공을 대여섯 살 밖에 안되어 보이는 아이 머리통에 맞추는 걸 보고 기겁을 한 일이 있었다.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공놀이는 여기서 하면 안 되겠다고 중재를 했던 적이 있다.

"놀이터에서 그런 건 신고할 수가 없어."

"......."

중립을 지켜 대답하길 잘했다며 나를 칭찬함과 동시에 속에서 불길이 확 솟았다. 아무리 형이 하지 말란 걸 했다고 해도 그렇지 목을 조르다니!!!!  ㅇㅇ 이 녀석 정말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다. 하지만 내 아이가 ㅇㅇ의 뭔가를 자극했겠지,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고 아들에게는

"그러니까 힘을 길러! 형님이 되면 되는 거야!"

쿨한 척 한마디 하고 눈만 감았다. 감은 눈 속에서는 영상이 펼쳐진다. 아들한테 소리친다. 도대체 열한 살이나 먹어서는 자기 방어력이 그 정도라니! 걱정이다! 편식이 원인이야. 이제 골고루 먹어! 운동도 꾸준히 좀 하고! 그리고 ㅇㅇ에게 소리친다. ㅇㅇ 너! 사람 목을 조르면 어떡하니! 엄마 불러와! 아줌마가 지켜볼 거야!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겠는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다.


늦잠 자서 눈을 비비고 있는 아들을 보니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저러니 동생한테 맞고 다니지......

그런데, 나도 늦잠 잤다. 밥도 안 했다. 서둘러 밥해먹고 남편에게 조용히 고민을 털어놨다.

남편이 주말 낮잠을 잔소리 콤보도 가기 전에 저 멀리 갖다 버리더니 벌떡 일어나서 아들에게 더없이 경쾌한 목소리로 힘을 키우러 가자고 한다.

"아빠랑 나가자!"


남편이랑 신나게 운동하러 가는 이 기이한 장면을 보니 문득 내 맘속에서 감사함이.

"ㅇㅇ야, 고맙다. 내가 그렇게 애를 써도 패스를 못 시키던 남편 낮잠을 ㅇㅇ가 해결하는구나."


감사함은 회복력을 키워준다.

감사하고 났더니 쭈욱 한방에 회복이 돼버렸다.

놀이터에서 ㅇㅇ를 보면 웃어나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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