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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Apr 17. 2020

슬기로운 <    > 생활

괄호 안에는 넣기 나름

살짝 현실감이 없지마는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

그들을 왜 결국 나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걸까? 분명 가상의 세계이고 드라마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절대 만날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르몬이 들쑥날쑥하는 운동부족 사십 대 아줌마는 한 시간 동안 웃음과 편안한 마음을 선물해주는 이 등장인물들을 만나는 날을 목 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머지 날들은 현실의 남자와 함께한다. 현실의 남자와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차이점을 생각해보고 나서 나는 경악했다. 너무도 분명한 이 구조.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인공들은 나에게 단점을 먼저 오픈했다. 마음껏 보여준다. 싸가지, 마마보이, 엄친아, 까불이, 원더우먼까지. 단점을 다 봐버렸다. 현실에서 그들을 만난다면 나는 분명 본능적으로 요즘 난리 난 사회적 거리두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공이기에, 탐나는 외모와 연기력을 가졌기에 나는 그들의 엄청난 단점을 잠깐 눈감아주고 또 본다.

회를 거듭하며 그 단점 투성이 주인공들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싸가지는 알고 보니 스윗가이의 포장지였고, 마마보이는 그야말로 세상 모든 엄마를  끝없이 존중하며 아버지라는 존재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고, 온 세상 여자의 사랑을 다 독차지할 줄 알았던 엄친아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까불이는 안 까불 때가 훨씬 많고, 원더우먼도 아프고 겁나는 순간이 있다. 점점 단점을 넘어서는 장점들이 나타난다. 그 때마다 흐뭇하다.


정말 단순한 구조. 조삼모사인가? 단점이 먼저였냐, 장점이 먼저였냐였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장점에 끌려 다가갔다. 좋은 사람만 만났다는 것이다. 남편이 좋아서 결혼했다. 같이 지내다 단점이 보이니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슬기롭지가 못하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삶을 살았나 생각하는 찰나 재밌는 동영상을 봤다.


아이가 듣는 온라인 클래스에 나오는 '도덕의 시작' 동영상. 십 개월 된 아기가 누군가를 방해하는 네모 대신 누군가를 돕는 착한 세모를 고르는 영상이었다. 실험에 참가한 모든 아이들이 세모를 잡았다. 시작부터 우리는 도덕적인 것을 갈망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좋게 좋게 교육하려는 동영상이었으나 나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우리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남을 도와주지 않는 네모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도덕의 시작'이라기보다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제목을 붙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구조를 알고 나니, 단점을 먼저 보고도 그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지켜보고 함께하는, 그래서 장점을 더 많이 찾아내며 장점을 발견할 때마다 기쁘고 즐거운  '슬기로운 <    > 생활'을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장점 보고 만났으니 되바꾸긴 쉽지 않겠지만 단점 발견한 오늘부터 새출발 해봐야겠다.


네모 안에는 뭐든 들어간다. 엄마, 작가, 자식, 아내, 친구 또 얼마든지.....

단점부터 시작이다. 세모를 잡았던 아기에서 네모를 잡아보는 어른으로.....






실험에서 혹여나 네모 잡은 아기가 있지는 않았을지 (단 한 명이라도) 정말 궁금하다. 영상은 편집이란 과정을 거쳐 공개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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