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할 수 있는
2006년 4월
결혼, 시작. 드디어 고치를 찢고 나와 날개를 뽐내며 내 세상을 나는구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보려 했는데 어째 날개가 펴지질 않았다.
2010년 1월
출산, 육아 시작. 나는 나비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고군분투 끝에 허물을 겨우 벗어낸 애벌레였다. 꼬물꼬물 아직은 둔하고 느린 몸을 열심히 움직여가며 나와 같은 애벌레를 보았다.
2016년 6월
등단, 공식적인 작가 생활 시작. 허물 벗기에 익숙해졌다. 갑갑한 느낌이 들면 비좁아진 허물을 벗고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탈피를 했다.
2020년 현재
계속되는 허물 벗기, 위험할 땐 숨고, 배고플 땐 먹으며, 매일매일 신기한 것과 마주하는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당연한 일상이다. 허물 벗기를 끝내고 고치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훨훨 날아보기 위해서? 아니면 대차게 울어보기 위해서? 잘 모르겠다. 아직은 고치라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줄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커다란 몇 개의 시작을 거쳐 나의
시작
은
새로운 시작
을 찾아냈다.
<합격, 취직, 결혼, 승진, 출산, 출간>의 시작에 홀려있던 내가 매일 아침 하루의 시작, 아침식사 준비의 시작, 브런치를 눌러 글쓰기의 시작, 이런 작은 아니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하루에도 몇 번은 계속되고 있는 시작들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그 시작들에 점점 무게가 실린다. 중량으로 나타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무게, 공기만큼이나 많아 감히 잴 수 없는 무게다. 이 시작들은 끝이 있다. 마침표를 딱 찍는 것처럼 명쾌한 끝이 있다. 끝이 그리 멀지도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는 도대체 몇 번을 날은 건지 모르겠다. 해냈다! 수도 없이! 그리고 또 시작할 수 있다. 언제든지 말이다.
끝이 있는 시작이 쌓이고 쌓이면 또 무슨 생각의 변화가 생길까?
기대가 없어서일까? 궁금한 마음이 없다. 그냥 지금, "새로운 시작"에 빠져있는 요즘,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시작에 빠져있거나 시작하지 못했다고 주저앉아 망했어를 외치며 울지 않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언젠가는 오게 될 생각의 변화도 마냥 기다려 볼 수 있어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