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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Apr 23. 2020

내가 찾는 선물

받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 참 많다. 내 어릴 적을 생각하며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 피아노 전시장에 가지 않아도 마음껏 칠 수 있는 피아노, 최신 레고, 육십 색 크레파스 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을지라도 어떻게든 멋진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 마음은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에게도 그것이 선물이었을까?




엄마는 시골에 있는 엄마의 시댁에만 가면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내 기분도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이였으므로 잊어먹기 바빴다.

도시에서 사는 나에게는 할아버지가 직접 지어 비뚤거리는 옛날식 기와집 여기저기 있는 틈새 구멍도, 침을 발라 누르면 쉽게 뚫리는 한지 문도 놀 거리였다. 부엌 아궁이에는 무엇을 넣어도 빨갛게 타버렸고 어쩌다 알게 된 할머니의 식량창고 방과 할아버지 방 벽에 있는 쪽문은 탐험 목표물로 정하기에 딱 좋았다. 보슬보슬하고 텁텁한 맨드라미와 끝을 빨면 달콤한 꿀이 나오는 꽃들 그 위에 앉은 잠자리는 대단한 장난감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손가락을 쭉 펴고 있으면 손가락 끝에 앉는 잠자리도 있었다. 그러면 도둑 잡는 경찰처럼 삽시간에 잠자리 날개를 손가락으로 잡았는데, 혹여 날개를 잘못 잡으면 얇은 풀 같은 날개가 찢어져 잠자리가 다시는 못 날게 될까 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수두에 걸렸을 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큰... 무언가(장난감)를 사주셨다. 크리스마스에는 그때 유행하던 양파머리 인형을 선물로 사주셨는데 지금은 때가 꼬질꼬질 더러운 유행이 한참 지난 인형일 뿐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그때의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수두에 걸린 덕에 받은 선물은 기억조차 없다. 아마 엄마 아빠는 큰 맘먹고 사서 내게 안겨주셨으리라.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엄마 아빠가 일부러 챙겨주진 않았지만 내가 찾은 선물은 아직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크기가 바뀌지도 않았고 빛이 바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하나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커다란 선물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종합 선물세트다.

나의 엄마는 인상 쓰고 앉아있던 시댁의 대청마루가 후에 나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 될지 모르셨다. 그저 힘들어도 피하지 않고 꾸역꾸역 찾아가는 성실함으로 엄마 인생을 사셨을 뿐이다.


문득 우리 집 거실을 보니 가슴이 아린다. 잔뜩 쌓인 장난감, 책,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 재작년 크리스마스 선물, 내가 퍼부은 선물 속에 파묻혀 있었을 아들에게 미안함이 든다. 이제라도 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엄마 아빠의 성실한 삶에서 값진 선물을 찾아내길 바란다. 하지만 내 바람보다 먼저 아들은 이미 자기만의, 자기를 위한, 영원히 간직될, 엄마는 절대 알 수 없는, 끝내주는 선물 하나씩을 매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선물은 삼십 년쯤 지나 바래지 않은 생생한 모습으로 아들을 미소 짓게 할 것이므로 이번 어린이날에는 지갑을 많이 열지 않고도 당당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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