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과 위장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
시간은 참 잘도 흘러가서 벌써 추억이 돼버렸지만 다시 어제인 듯 끄집어내 본다.
2년 전 아들과 단 둘이 한 이탈리아 여행
십일이 넘는 기간 동안 볼로냐에서 머물렀는데 꽤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론 죽도록 힘들었다.
첫 식사가 기억에 남는다. 음식 남기면 죄받고 음식 버리지 말라는 내 교육관이(실제 지키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무너지는 식사시간이었다.
우리는 시킨 음식을 반에 반에 반도 못 먹고 서로 버리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함께 신기한 쓰레기통에 음식을 다 쏟았다.
배가 고팠지만 또 다른 걸 시켜도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그냥 다른 사람들 먹는 거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한 것이다.
간단한 빵 종류는 그나마 안전한 맛이 보장될 줄 알았지만 그것도 그렇지가 않았다. 결국 싸 두었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꺼내 먹는 방식을 택했다.
아들은 아침에 나오는 누텔라를 며칠 퍼먹더니 설사병이 생겼다. 번역기를 돌려 약국에서 꽤 비싼 돈을 주고 유산균을 사서 먹였는데 다행히 효과가 좋았다. 계속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집 저 집에서 실패를 해가며 맛집을 찾았다. 생선요리가 그나마 제일 우리 입맛에 맞았고 초밥은 그야말로 잠수 후 숨 쉬는 기분으로 먹을 수 있었다. 속이 느끼해질 때면 초밥집을(숙소에서 꽤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사의 힘을 다해 찾아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느끼함과 짠맛에 익숙해지고 메뉴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을 때 우리는 피사에 갔다. 야외테이블이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점심으로 토마토소스로 요리한 라자냐와 스파게티를 시켰다. (크림 스파게티 좋아했던 아들은 첫날 버렸던 크림소스 요리 이후로는 절대 크림을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도 선명하다. 따듯한 햇살, 파란 하늘, 여유로운 사람들, 그리고 내 얼굴만 한 라자냐......
라자냐가 그렇게 클 줄이야. 스파게티 역시 양이 많아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았다.
그리고 옆 테이블의 외계인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아바타족을 보는 기분이었다.)
부부 둘과 아장아장 걷는 아기, 유모차에 누운 아기 가족이었다. 그들은 스파게티 가득 하나, 피자 한판, 라자냐를 시키고 와인을 시켰다. 주스도 시켰다. 아기들은 별로 많이 먹지도 않았다. 고민하다 하나를 포기해야 했던 후식도 그 가족은 두 개를 다 시켰다.
라자냐를 넣고 후식을 먹어보겠다고 위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아내고 있던 터라 그 가족이 정말 외계인으로 보였다.
그때
유모차에 앉은 아기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이(아장아장 걷는 아기) 그 소리를 따라냈다. 아이들이라면 기본적으로 다 낼 줄 아는 익숙한 그 소리! 일명 돌고래 소리!
'엄마 아빠 고만 먹고 나랑 놀아줘요! 뭘 그렇게 많이 계속 먹어!!!!!'
나에게는 이렇게 자체 번역이 되는 소리였다.
아이 엄마가 일어났다. 형을 끌고 갔다. 후미진 곳으로 가서 훈육을 시작했다.
뭐 스탑! 돈 두댓! 이런 종류의 말이었으리라. 그리고 더하자면 공공장소에서는 그렇게 떠들면 안 된다는 설명과 회유가 엄하게 진행됐다. 유모차에 앉은 아기는 당연히 조용해졌다. 나름의 이벤트였을 테니까 말이다. 큰아이는 엄마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엄마와 함께 다시 자리로 왔다.
그리고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다시 돌고래 소리를 내는 큰아이, 같은 소리를 내는 유모차 속 아기.
엄마 당황.
다시 큰 이아와 구석으로 이동.
훈육 후 식사자리로 돌아옴.
그리고
다시 돌고래 소리!
아, 난 이 돌림 상황이 계속될 것임을 알고 속으로 미친 듯이 웃었다. 더 이상 그들이 외계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몰려드는 친밀감. 야외 테이블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나로서는 '애들이 다 그렇죠. 너무 힘 빼지 마요.'라며 오지랖을 부리고 싶기까지 했다. 돌림 상황을 몇 번 하는 동안 아빠는 음식을 입안에 몰아넣었고 식사를 끝낸 그들은 여전히 돌고래 소리를 내는 아이 둘을 끌고 사라졌다.
우리는 지구에 사는 엄마 아빠!
이탈리아에도 우리가 있었다!
지금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탈리아의 우리에게 응원과 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