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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엄마 Mar 26. 2020

먼 나라 이웃나라

때는 온다


아이에게 괴로운 맘 없이 정말 많이 해준 게 뭘까? 자문해보면 단연 책 읽기다.

애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끝을 모른다. (끝을 알리가 없다. 우리는 뭐 끝을 아나.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게 인생이니까) 끝을 모르는 아이가 끝없이 말했다.

또! 또!

이것도!

이것도!

들고 오는 책은 다 읽어줬더니 책장 한 칸을 다 비워서 침대로 들고 오기도 했다. 이야기에 맛이 들려버린 아이는 30개월쯤 되니 자기가 읽은 책의 줄거리 를 요약해서 나에게 설명을 해댔고(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더 새로운 이야기, 다른 이야기를 원했다.


그맘때 도서관에 가면 만화책에 코 박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내 아이는 나와 책이란 책은 다 꺼내 읽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만화책에 코박은 아이에게 안타까운,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더랬다.)

그리고 긴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는데

대여섯 살에 초등학년이 읽을 법한 '서유기'를 듣고 있었다. 어려운 단어가 계속되니 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듣기를 멈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여덟 살!

아이가 만화에 빠졌다.

읽어줄 필요도 없이 혼자 계속 읽었다.

지인 집에 놀러 갔다가 처음 접한 ㅇㅇ에서 보물찾기 시리즈를 하나 읽은 것이 시작이었다. 어딜 가든 만화책을 찾아내고 도서관에서도 서점에서도 만화책에 자석처럼 달라붙어 계속 읽어대고 세계사 한국사 만화책 등등 온갖 학습용 만화책에 빠지더니 눈만 뜨면 책이 닳아지도록 읽어댔다.


다시 내 뇌에 과부하가 걸렸다. 상상병이라고 진단 내려도 지나침이 없을 상상 시작!


만화만 읽다가 책을 못 읽으면 어쩌지? 더 자극적인 만화책만 읽으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쟤는 만화에 나오는 감탄사만 읽는 걸지도 몰라. 아니지. 그림만 보나? 글자를 읽기는 하는 걸까?


꾀가 났다. 만화도 좀 감탄사가 덜 나오는 만화를 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먼 나라 이웃나라' 구입!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것만 생각하고)

초등 일 학년에게 먼 나라 이웃나라는 그냥 먼 나라 얘기였다.

글자가 어찌나 쪼그맣던지

한 장 펼쳤다가 내가 덮었다.


엄마가 미안.

쓸데없는 꾀를 내었구나.

너 읽던 거 읽으렴.




그 이후부터는 욕심은 버렸으나 노력은 했다.

만화를 싹 창고에 넣어도 보고 (이건 대실패였다. 밥 먹다가도 갑자기 만화책의 00페이지에서 00 장군이랑 싸운 00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엄마 때문에 확인을 못한다고 하니 내가 그냥 스스로 창고에서 꺼내 줄 수밖에 없었다.)

읽는 시간을 정해도 보고 (이건 일주일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시간을 못 지키면 책장을 막아버리기로 약속했었다. 사진처럼 며칠 못가 초토화되었다.)

책을 다 뒤집어 꼽아도 보았지만 (불편하면 좀 덜 볼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아이는 자석처럼 만화책에 붙었다.

그렇다고 내 상상처럼 되지는 않았다. 글자도 읽고

취향껏 재미를 느끼는 책은 만화책이 아니어도 읽어댔다.


그렇게 삼 년 후

내가 먼 나라 이웃나라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어제


내가 상상 안 했던 일이 일어났다.


먼 나라 이웃나라가 드디어 아이 눈에 들었다. 그것 참 신기하다. 삼 년 묵은 책이 선택받아 책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게임 끝이다. 그 책은 쭈욱 사랑받을 것이다. 끝을 모르는 아이니까 말이다.


오늘 얻은 깨달음 (내일은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르지만)

때는 온다.

준비해놓고 기다리자.




자기 전 아이가 해주는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를 들었다. 꿀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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