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속에 살아라. 단조로운 삶에 빠지지 말라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단순히 무모하게 살라는 말을 하려던 건 아닐 것이다.
삶은 원래 불확실한 것이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각자 나름의 기준을 세우며 살아야 한다는 뜻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어쩐지 리스크관리라는 일을 떠올렸다.
이 일은 ‘위험을 피하는 일’은 아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위험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에 가깝다.
리스크는 손실의 위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수익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미 손실이 확정된 상태, 혹은 수익이 보장된 상태는 더 이상 ‘리스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리스크관리란, 얼마만큼의 리스크를 가져갈지, 어느 지점에서 멈출지를 선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리스크를 줄이기만 해선 안 되고,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너무 좁게 잡으면 중요한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실무를 하다 보면 늘 균형을 고민하게 된다.
수익을 쫓을 것인가, 안정성을 지킬 것인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고, 결국은 “우리는 이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에 도달하게 된다.
숫자를 보고, 모델을 짜고, 시나리오를 돌리는 건 다 그 판단을 돕기 위한 도구다.
결국 중요한 건, 그 리스크를 누가, 왜, 지금 이 시점에 감내하기로 했는가라는 점이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선택은 설명 가능한가?
만약 손실이 발생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구조였는가?
리스크관리란 그런 식의 점검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하는 일은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줄이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상황에 맞게 구조를 세우고, 감당 가능한 리스크를 조율하는 일에 더 가깝다.
리스크는 피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안아야 할 것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가 어디까지인지 조율하는 일, 그게 바로 우리가 매일 하는 일 아닐까 싶다.
리스크관리는 우리가 조금 더 현명하게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