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별자리가 별똥별이 되던 밤

by 김이밤

환상의 별자리와 현실의 땀방울


2023년 9월, 가을 축제의 열기가 캠퍼스를 덮쳤던 밤이었다. 화려한 폭죽 소리와 함께,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유튜브 영상이나 이어폰 너머의 음파로만 존재하던 그들이,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멍하니 그들을 영접하던 도중, 문득 기묘한 감각이 나를 스쳤다. TV 화면 속에선 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다른 세상의 존재였는데, 가까이서 본 그들은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실 속 육체 노동자들 같았다. 노래가 끝난 직후 어두워진 조명 아래서 몰아쉬는 가쁜 호흡, 그리고 찡그린 미간에서 느껴지는 근육의 비명.


연예인의 실물이 실망스러웠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화면보다 입체적인 외모에 압도당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만, 밤하늘에 박제되어 신화처럼 존재하던 ‘별자리’를 보다가, 지상으로 내려와 박물관에 전시된 ‘별똥별’의 실물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 기분이었다. "아, 저들도 퇴근하고 나면 다리가 붓고 배가 고픈, 나와 같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흔히 밤하늘의 별 몇 개를 이어 놓고 ‘큰곰자리’니 ‘오리온자리’니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실제 곰이나 사냥꾼은 없다. 그저 서로 아무런 상관없이 수백 광년 떨어져 타오르는 거대한 가스 덩어리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 별들 사이의 광활한 어둠을 상상의 선으로 채워 의미를 부여한 건, 저 별을 올려다보는 인간의 눈이다.


이날 내가 마주한 아이돌의 실물도 그랬다.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그들이 보여준 아주 작은 ‘점’들을 내 멋대로 이어 붙여 만든 나만의 별자리가 아니었을까.




뇌가 싫어하는 것: '공백'


이날의 경험은 나에게 ‘정보의 수용’에 대한 서늘한 깨달음을 주었다. 비단 연예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접하는 모든 대상(타인에 대한 소문, 역사적 사건, 누군가의 성격 등)은 결코 원본 그대로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는다.


어떤 정보는 대중매체라는 화려한 필터를 통과하며 굴절되고, 어떤 진실은 시간이라는 체에 걸러지며 미화되거나 풍화된다. 사람들의 입을 거친 소문은 살이 붙어 왜곡된다. 결국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그 대상의 거대한 실체 중 극히 일부인 ‘편집된 단면’에 불과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인간의 뇌는 ‘비어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가 도착하면, 그 부족한 여백을 자신의 경험, 편견, 혹은 그럴듯한 논리로 빠르게 메워버린다. MBTI가 내향형이라는 정보 하나만으로 “너는 소심하겠구나”라고 단정 짓거나, 단 한 번의 실수로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평가절하하는 오류는 그렇게 탄생한다. 우리는 자신이 완성한 상상의 결과물을 ‘팩트’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린다.


그날 무대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춤추는 그들을 보며 나는 느꼈다. 내가 상상으로 채워 넣었던 그들의 빈칸(지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함, 화장실도 안 갈 것 같은 신비로움)들이 사라지는 것을. 대신 그 자리에는 자신의 업을 수행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직업인’의 숭고함이 들어찼다.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별자리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훨씬 더 입체적이고 뜨거운 체온을 가진 ‘사람’이었다.




점 잇기를 멈추는 용기


그날 이후, 나는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훨씬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조립된 타인의 이미지조차, 실은 나의 불안이나 동경이 투영된 허상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고통은 미화되어 좋은 추억으로 왜곡되고, 건너 들은 타인의 실수는 과장되어 '인격적 결함'으로 기억된다. 이 살벌한 왜곡의 메커니즘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나의 확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이 빈칸을 나의 뇌피셜로 채우지 말자."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별들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섣불리 선을 그어 별자리를 만들고 숭배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그 별이 내뿜는 빛을 있는 그대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어둠은 어둠인 채로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별을 대하는 관찰자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내 멋대로 상대를 재단하지 않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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