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연병장의 메시

by 김이밤


기적의 허리


군 복무 시절, 우리 소대에는 미스터리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일명 '허리 브레이커'로 불리던 동기 A. 몸을 쓰는 일이 생길 때면, 세상 무너질 듯한 표정으로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덕분에 행군, 진지 공사 같은 콘텐츠에서 항상 열외 되는 특권을 누렸다. 반면, 나를 포함한 건강 호소인들은 A의 몫까지 삽질을 하며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일과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기적이 일어났다. 전투화를 벗고 활동화로 갈아 신는 순간, 죽어가던 A의 척추에 생명수가 도는 것이다. 그는 연병장으로 달려 나가 리오넬 메시에 빙의한 듯 현란한 드리블을 선보였다. "야, 너 허리 아프다며?"라고 물으면 그는 해맑게 답했다. "아, 뛰니까 좀 풀린다!"


전역 후 복학한 학교에서도 이 기이한 현상은 반복됐다. 조별 과제 때마다 "제가 컴퓨터를 잘 못 다뤄서요..."라며 수업 후 PC방으로 달려가던 팀원. 결국 PPT 제작과 자료조사는 내 몫이 되었는데, 며칠 뒤 그의 인스타에는 영화 예고편마냥 화려한 편집기술이 담긴 대외활동 기록 영상이 올라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것은 의학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적 약자'의 영역이구나. 하기 싫은 노동 앞에서는 100세 노인이 되었다가, 놀 때는 20대 청춘으로 회춘하는 저 신비한 메커니즘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픔'으로 포장된 것들


물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있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우울증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있고, 웃고 있어도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병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그들의 치열한 투쟁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우리 사회는 그들을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은 진짜 아픈 이들이 아니라, 그 '아픔'과 '약자성'을 자신의 이득을 위한 '편리한 도구'로 스위치 켜듯 껐다 켰다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무기 삼아 타인의 호의와 노동력을 착취한다. 집안일 앞에서는 "남자가 이런 건 잘 못 해"라며 손 하나 까딱 안 하면서, 복잡한 게임 공략이나 자동차 튜닝은 기가 막히게 해내는 남편. 혹은 "나는 멘탈이 약해서 싫은 소리 못 들어"라며 업무 피드백은 거부하면서, 뒤에서는 남의 험담을 가장 신랄하게 주도하는 직장 동료. 이들은 자신이 불리할 때만 '약자'의 포지션을 취한다. 주변 사람들은 "쟤가 원래 좀 예민하잖아", "원래 몸이 약하잖아"라며 배려를 강요받는다. 결국 그 배려라는 이름의 짐은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아파도 티 내지 않고 참아내는 '보통 사람들'의 어깨 위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K-장녀'의 비애


이러한 '선택적 약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제도적 약자의 울타리에 들어가지 못한 '애매한 경계선'에 선 사람들은 묘한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신체적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친구가 헬스장에서 3대 500을 치는 영상을 올리거나, 우울증을 이유로 업무에서 열외 되었던 지인이 그날 밤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볼 때. 혹은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서류상 소득 분위 컷에 아주 조금 걸려 국가 장학금을 못 받는 친구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명품 가방을 든 동기를 부러워할 때. 내 안의 정의관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는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안이 어렵거나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그 부양의 의무는 종종 "넌 착하니까", "넌 생활력이 강하니까"라는 이유로 묵묵한 'K-장녀'나 '성실한 자식'에게 몰린다. 반면, 평소 "나는 약하다", "나는 자리를 못 잡았다"라고 말하는 다른 형제는 그 의무에서 교묘하게 열외 된다.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보호받고 싶은 자식임에도, 단지 '참을성이 있다'는 이유로 강자 취급을 받으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애매한 일반인들이 학비 마련을 위해 야간 알바를 하며, 혹은 가족을 부양하느라 젊음을 저당 잡히는 동안, 누군가는 그 '약자'라는 타이틀을 방패 삼아 얻은 시간과 기회로 자기 계발을 하고 더 넓은 세상을 누린다. 과연 이것을 공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서류상의 진단서나 수치 몇 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책임을 짊어진 수많은 회색지대 사람들의 고단함을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통의 고통


내가 배운 정의와 윤리는 교과서 속에 정갈하게 적혀 있었지만, 내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의 풍경은 너무나 다르다. 약자란 누구인가. 진단서 한 장, 소득 분위 증명서 한 장이 그 사람의 모든 고통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진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은, 어쩌면 "나는 아프다", "나는 힘들다"라고 소리 칠 요령조차 없어서, 혹은 소리 칠 명분이 없어서 오늘도 묵묵히 '보통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보호받지 못하는 그들의 애매한 고통에 심심한 위로를 건네며, 선택적 약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향해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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