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평소 안 하던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가 무릎을 다쳐 잠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일이 있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걷는다’는 행위는 마치 스마트폰을 처음 샀을 때부터 이미 세팅되어 있는 기본 설정값처럼,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해서 의식조차 해본 적 없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수술 직후, 마취가 풀리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묘한 공포가 엄습했다. 자세 하나를 바꾸려는 데도 마치 거대한 크레인을 움직이는 것처럼 온몸의 근육과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내 다리는 영구적인 옵션이 아니라 언제든 해지될 수 있는 구독 서비스였구나.'
입원한 지 며칠 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나 홀로 화장실 가기' 퀘스트를 처음 성공한 날에는, 나는 변기를 붙잡고 기이할 정도의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이 거창한 철학 책에 있는 게 아니라, 내 힘으로 배설을 처리하고 물을 내릴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니.
그리고 얼마 뒤, 휠체어를 타고 처음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그 공포는 리얼 생존 다큐가 되었다. 두 발로 걸을 때는 매끄러운 평지처럼 느껴지던 서울의 보도블록이, 휠체어 바퀴 위에서는 그야말로 험준한 산악 지대였다. 휠체어 위에서는 아주 미세한 균열이나 보도블록 틈새의 진동이 내 척추를 타고 뇌까지 전달되었다. 계획에 없던 서울 도심 오프로드 체험은 꽤나 고역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최종 보스는 바로 ‘턱’이었다. 건강할 땐 있는 줄도 모르고 성큼 넘어 다녔던 편의점 입구의 10cm 남짓한 턱. 하지만 휠체어 바퀴 앞에서는 그 고작 10cm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졌다. 입구가 눈앞에 보이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그 심정이란. 에스컬레이터, 계단, 좁은 화장실... 도시의 모든 편의 시설이 "너는 여기 못 들어와"라며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세상은 두 발로 걷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설계된 견고한 요새였고, 나는 그 성벽 밖으로 밀려난 이방인이었다.
휠체어 생활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렌즈를 완전히 바꿔주었다.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장애인 전용 화장실, 저상 버스... 예전에는 "아, 있네"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그 시설들이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결과물임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섬뜩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세상에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나 한 명뿐이었다면? 혹은 그 수가 극히 적어서 투표권이나 구매력에 0.001%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면? 과연 사회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보도블록 턱을 깎아주었을까? 아닐 것이다. 차가운 자본주의 논리대로라면 소수를 위한 인프라는 제거해야 할 ‘비효율’이다. 희귀병 환자의 약값이 억대를 호가하는 이유가 그 약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가 적어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듯, 나의 이동권도 ‘쪽수’가 없었다면 철저히 외면당했을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사회적 배려 시설은 누군가의 선의로 뚝딱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약자가 거리로 나와 "나도 버스를 타고 싶다", "나도 이동하고 싶다"라고 외쳤던 치열한 투쟁의 결과이며, 그들의 존재가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되었기에 쟁취해 낸 전리품이다.
문득 수업 시간에 졸면서 들었던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떠올랐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시스템에 기꺼이 세금을 내고 동의하는 이유는, 우리가 언제든 그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당장 내일 사고로 휠체어를 탈 수도 있다는 그 ‘잠재적 공포’가 우리를 연대하게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결국 정의는 타인을 위한 이타심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를 위한 보험이기도 하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다시 두 발로 땅을 디뎠을 때, 나는 예전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내가 스마트폰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건너는 횡단보도의 초록 불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식은땀 흐르는 목숨 건 질주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볍게 오르는 계단 몇 개가 누군가에게는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진입 금지 표지판일 것이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나의 건강함은 태생적 행운이자 부모님의 보살핌, 그리고 나 자신의 치열한 관리 덕분에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축복이다. 내가 누리는 도시의 편리함은 앞서 싸워준 누군가의 목소리 덕분에 존재하는 혜택이다.
앞으로 나는 10cm의 턱을 넘을 때마다 기억할 것이다. 이 사소한 움직임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내가 약자가 되었을 때, 혹은 또 다른 약자를 마주했을 때, 기꺼이 그들의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것이 1m 높이의 휠체어 위에서 내가 배운 세상의 또 다른 눈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