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엑스트라를 위한 조문객은 없다

by 김이밤


최악의 영화관 파트너


영화관에서 액션 영화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면, 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건 최악의 선택이다. 남들이 팝콘을 씹으며 화려한 타격감에 환호하는 와중에, 나는 바로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가 악당을 잡겠다고 도심 한복판 빌딩을 시원하게 박살 내는 장면을 보자. 내 머릿속 알고리즘은 영웅의 승리가 아닌, 엉뚱한 현실적 걱정으로 뻗어 나간다. '저 건물 안에 야근하던 회사원들은 대피했을까?' '방금 박살 난 핫도그 트럭 사장님은 이제 뭘 먹고사나.'


어릴 때부터 유난했다. 모두가 피터팬의 승리에 박수 칠 때, 나는 한쪽 손을 잃고 악어에게 쫓기는 후크 선장의 안위와 트라우마를 걱정했다.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에게 밟히는 행인 1을 보며 "저 사람도 집에 가면 토끼 같은 자식들이 기다릴 텐데..." 하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친구들은 "영화는 영화로 봐라, 왜 혼자 다큐를 찍냐"며 핀잔을 줬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남들이 '주인공 보정'을 받은 영웅에게 이입할 때, 이름도 없이 화면 구석에서 비명횡사하는 '단역'에게 과몰입하는, 아주 피곤한 관객이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맞는가


영화는 주인공의 영웅적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수십 명의 병사를 소모품처럼 사용한다. 주인공의 손끝에 스친 찰과상에는 비장한 오케스트라가 깔리는데, 엑스트라의 목이 날아가는 장면은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0.5초 만에 편집된다. 나는 이 '생명 무게의 불균형'이 견딜 수 없이 불편했다.


왜 그랬을까. 어린 마음에도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저 스크린 안으로 들어간다면, 총알도 피해 가는 불사신 주인공보다는, 도망치다 넘어져 파편에 깔리는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일 확률이 99.9%라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겪는 지금의 시련은 영웅 서사의 빌드업이고, 이 고통 끝에는 반드시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싶어 한다. "이렇게까지 힘들었는데, 언젠가는 빛을 보겠지."라는 기대. 그것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주인공 병'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영화에선, 아무리 기구한 삶을 살아왔더라도, 그 고난이 반드시 행복한 결말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권선징악의 법칙보다 무작위적인 '확률'과 '부조리'가 더 자주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의 불행이 세상의 오류가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의 문제였음을 인정하는 것. 내가 특별히 선택받은 주인공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n분의 1'임을 받아들이는 것. 다소 서글프지만, 이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비대해진 자아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내가 느꼈던 그 막연한 불편함은,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진짜 운명을 일찍이 예감했던 서글픈 연대감이었던 것 같다.





엑스트라의 방식


내가 엑스트라임을 자각했다고 해서 내 삶이 비극인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삶은 계속되고, 카메라는 꺼져도 우리의 시간은 흐른다. 다만, 나는 이제 나의 방식대로 이 세상이라는 영화를 대하기로 했다.


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엔딩 크레딧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존재했던 수백 명의 이름들처럼, 이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건 영웅 한 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수많은 조연들이다. 그들의 노고를 눈으로 훑고 기억하는 행위는,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존중이기도 하다.


또한, 타인을 내 삶의 NPC로 소비하지 않겠다. 편의점 알바생, 버스 기사, 식당 종업원을 내 하루를 위한 배경 텍스처로만 대하고 있진 않은가. 그들 또한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자, 퇴근 후에는 치열한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 각자의 인생 주인공들이다. 계산하며 건네는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서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보다, 화면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단역의 표정에 더 눈길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내 주변의 이웃들을 바라볼 것이다. 카메라가 비춰주지 않는 그들의 소박한 서사가, 진짜 내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의 이야기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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