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아직 닿지 못한 시선들에 대한 고백

by 김이밤


글을 마무리하며,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 놓으려 한다. 내가 써 내려간 글에 담긴 수많은 단상들이 사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작은 씨앗에 대한 이야기다.


2021년 여름, 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어느 외곽의 좁은 초소 안에 있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에어컨 하나 없는 낡은 공간의 공기는 뉴스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끈적했다. 숨이 턱 막히는 열기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라곤, 천장에 매달려 덜덜거리는 낡은 선풍기 한 대뿐이었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그 선풍기는 참 볼품이 없었다. 세련된 디자인도, 강력한 냉방 기능도 없었다. 그저 "끼익, 끼익" 하는 파열음을 내며 미지근해진 공기를 힘겹게 밀어낼 뿐이었다. 나는 그 소리가 거슬려 근무 내내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그날 함께 있었던 선임은 유독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화려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법 없이, 늘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문득 그의 지난 행동들이 떠올랐다. 모두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 말없이 내 군장에 생수병을 찔러 넣어주던 손길, 남들이 흘린 땀으로 젖은 바닥을 묵묵히 닦아내던 뒷모습.


순간, 천장에서 돌아가던 낡은 선풍기 소리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구석에서, 누구의 칭찬도 없이 묵묵히 고개를 돌려 제 몫의 바람을 만들어내던 그 기계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말 없는 사람과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의 짧은 단상은 내게 거대한 질문을 남겼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며 살아왔을까. 화려하고 시끄러운 주인공들에게 시선을 뺏겨, 정작 내 삶을 지탱해 주던 '배경'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의 글은 바로 그 부끄러움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무대 중앙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눈을 떼고, 시선이 닿지 않았던 사각지대로 고개를 돌려보려 애썼다. 엑스트라들의 표정을 읽고, 당연한 상식 뒤에 숨은 모순을 캐내고, 침묵의 소리를 활자로 옮겨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름대로 사각지대를 비추겠다고 노력했지만, 내 시야는 여전히 20대 청년이라는 좁은 창문에 갇혀 있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겪은 경험의 한계, 내가 살아온 환경의 울타리, 그리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지적 미성숙함으로 인해, 나의 시선은 세상의 모든 아픔과 진실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쩌면 나의 섣부른 판단이 누군가의 복잡한 삶을 단순하게 재단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해했다'고 믿었던 타인의 슬픔이 실은 나의 오만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정의'라고 외쳤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소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내내 나는 나의 무지가 두려웠고, 내 시선이 닿지 못한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슬픔'들에게 미안했다.


이 책은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나의 '오답 노트'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족한 기록을 당신에게 내미는 이유는, 저 낡은 선풍기처럼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비록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고 미지근한 바람일지라도, 멈추지 않고 소외된 구석구석으로 공기를 밀어내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좁은 시선도 조금은 더 넓어지리라 믿기에.


부디 이 글의 행간에 숨겨진 나의 서툰 진심이, 당신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작은 촛불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부족한 시선이 닿지 못한 그곳에는, 당신의 따뜻한 눈길이 대신 머물러주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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