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윤 Jun 12. 2019

일상인과 예술가

예술가도 아닌 주제에 일상이 왜 이리 어렵냔 말이다.

우울하다. 다시 또 우울해져 버렸다. 다른 단어를 찾고자 했으나 기만이었다. 낯익은 우울함의 시기가 왔다. 


일주일째 우울하다. 나는 3일 넘게 소파와 침대를 오가며 삼천이를 안고 뒹굴었다.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껴들 틈 없이 쉴 새 없이 드라마를 보았다. 유튜브를 보았다. 예능을 보았다. 목이 결려왔고 어깨가 뻐근했다. 자세를 바꾸는 건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몰입한 후에는 그저 멍했다. 그 두통이 지속되는 것도 싫었고 그렇다고 낫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무언가 생각할 수밖에 없고 또다시 우울해지고 이내 내가 한심해질지도 모른다.


처음 우울할 땐 눈물을 많이 흘렸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책하고 원망하다 이내 그게 잘 살고 싶은 욕심과 드높은 자존심에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창피했다. 그때부터 슬픔과 번민의 수도꼭지를 꽉 잠그고 우울해도 슬픔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잘 단속했다. 우울해도 슬프지 않았다. 부작용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슬픔을 막는데 온 힘을 다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했다. 게으름의 상위 버전. 월요일부터 집 밖을 나가야지 생각만 하고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아무 이유 없이 또 모든 게 무서워지고 영원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단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래서 억지로 발을 옮겼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햇볕이 막 쏟아져 내렸다. 양산을 지니고 있었지만 펴지 않았다. 


우울해지면 혼자 있고 싶어 진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책도 읽기 싫고 강연이나 팟캐스트도 보기 싫어지고 영화도 별로 보고 싶어 지지 않는다. 글도 읽고 싶지 않다. 그건 누군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름없다.


용기 내어 팟캐스트를 들었다. 나보다 4살 어린 시인이 게스트로 나왔다. 그녀의 시적인 생각이 가슴을 할퀴었다. 딱히 해석하지 않아도 그녀의 이야기가 귀에 잘 들렸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분명 그녀가 좋아지리라. 일기를 쓰기로 했는데 쓰고 싶을 때만 쓴다. 15~17살 때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마냥 일기를 썼었다. 매일 일처럼 글을 써볼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녀가 말했다.


일상을 잘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술가는 일상을 잘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날엔 누구보다 일상을 묵묵히 잘 살아갈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일상인이 되고 싶었다. 왜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어려울까. 세상에 갓 태어났는데 세상의 탐구에 관심 없이 시니컬한 어린애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모를 때가 많다. 예술가도 아닌 주제에 난 일상을 잘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릴 땐 예술가가 되지 못해 서글펐다. 이렇게 외롭고 우울하고 고독할 거라면 이토록 나를 고립하고 잘 살아가지 못할 거라면 신이 불쌍히 여겨 재능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예술가라 그래.' 작은 변명을 해가며 그럭저럭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술가도 아닌 주제 일상인도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욕심 많은 이 여자와 어떻게 화해하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묵직해지는 머리와 다르게 내 몸은 걸음걸이를 잘 기억했다. 힘을 하나도 주지 않아도 땡볕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자동적으로 걸어갔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걸음걸이.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집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온 김에 은행에 갔다. 대기인은 1명뿐이다. 퇴직연금 계좌를 해지해달라고 하자 5분도 안 되어 맑은 인상에 임신한 게 분명한 은행원님은 모든 일을 처리해주었다. 돈은 내일 입금될 거라고 했다. 순간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일상이 부러워지려 했다. 나는 생각을 막았다. 그리고 메밀국수나 먹으러 가자고 생각했다.


1년 만에 메밀국수 집에 도착했는데 큰 캐리어 두 개가 테이블 옆에 놓여있었다. 좌식 테이블에 안고 싶지 않아 빤히 쳐다보며 고민하는데 앞에 앉은 두 손님이 캐리어를 치워주셨다. 메밀국수를 먹으려 하는데 전화가 왔다.


-OOO 씨 되시죠?
-네. 전데요.
-서울 지검 OOO검사....


듣지도 않고 전화를 홱 끊어버렸다. 스팸 전화받을 기분이 아니다. 끈질기게도 전화는 세 번이나 걸려왔고 차단 버튼을 눌렀다. 순간 밀려드는 짜증을 억누르며 메밀국수를 보며 삭혔다. 열어놓은 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메밀국수는 1년 전처럼 맛있었다. 나는 다음에 언니를 보면 메밀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리라 생각했다. 


천천히 조금 힘을 들여 집으로 걸어왔다. 이렇게 날씨가 좋고 우울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왜 우울할까 생각했다. 우울해질 핑계가 애석하게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술가가 아니라서 우울한 게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얼마나 찌질해 보일까... 


우편함엔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신청서가 도착해있었다. 집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깨끗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불에 누워 펑펑 울어버릴까 하다가 불쌍한 반려식물에게 물을 흠뻑 주고 집 정리를 마저 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우울해도 낙담하지 말고 어떻게든 일상을 만들어나가 보자란 기특한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수밖에 없다. 문득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예술인마을'이란 생각이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