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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un 30. 2019

결국엔 사랑

그저 무조건적인 사랑을 획득하는 여정이 인생

어제 인생 표어가 하나 추가되었다. 

내게 늘 자유가 중심에 있었고 따라서 나의 꿈이자 현실이자 미래이자 지향점은 '자유롭고 행복한 영혼으로 살아갑니다.'이다. 그러다 어제 문득 깨달은 평생 과업으로 삼아도 좋을 문구가 하나 떠올랐다.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단지 내가 불안에 시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불안'이란 책이 미친 듯이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서는 차례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 중간에 들른 알라딘 중고서점에 딱 한 권 재고가 남아 있어서 고민 없이 바로 집어 왔다.


지하철을 3 시간 하고도 30 분쯤 탔다. 신기하게도 그날따라 내가 서자 앞사람이 양보하 듯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래서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는 살아 있다는 이유 만으로 부모님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미소 짓고 떼 부리는 모든 게 사랑의 이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의 사랑엔 조건이 붙게 된다. 사랑(인정, 존중, 용인) 받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료해야만 하고 그 시도의 상당수는 실패하고만 한다. 우리는 늘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고 그 기억은 자신의 자아를 구성하는 데 재료로 쓰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조차 조건부를 단다. 그리고 평생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때로는 세상을 거부하고 타인을 깎아내리고 종국엔 자신을 생채기 내기 시작한다. 


사실 우린 처음부터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는데 모두 그냥 그렇게 태어났는데 마음을 먹는 순간 지금부터 그냥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데 말이다. 이를 까맣게 잊고 다시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친구, 연인, 동료, 단체, 세계를 찾아 헤매다 지치고 만다. 엄청 대단하고 고상한 목적과 목표로 치장해보지만 그 말을 해부하면 결국엔 우린 아이 때처럼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항상 사랑받고 싶은 거다. 그래서 확실히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란 확인을 하고 싶어 지는 거다.



4일 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말을 썼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도인이 될 텐데.'


내가 잘하는 건 부족하고 단점투성이의 자신을 알고도 다른 이를 만날 때 마음을 다해 나와 나의 생각과 마음을 보여주는 것. 나중 생각 안 하고 걱정 없이 순간순간 진심을 다해 상대를 사랑하는 것. 다만 이게 한정된 친구에게만 가능했다.


내가 나를 마음껏 사랑해주면 조금 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잘 모르는 그리고 조금 상처 받은 그리고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타인까지 정성스레 마음을 쓰다듬으며 아이의 눈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사랑해주고 싶다. 나처럼 오래도록 자신을 혐오하고 자신을 판단하지만 그 사실도 모르는 그/그녀를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싶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인사한다. 마음속으로 축복을 빈다. 더 인상이 찌푸려져 있고 더 어깨가 축 늘어진 사람에게 '오늘 하루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자세히 보면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에 태어나 각자의 인생을 고군분투하며 오로지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


나의 호불호에 상관없이 내게 주는 리액션에 관계없이 나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모두 귀한 존재인 타인을 허락 없이 그냥 사랑해주어야지. 물론 내가 나를 사랑해서 사랑받고 싶은 결핍이 들어설 자리 없게 해야지. 그렇게 하루를 살아보니 사랑이 가득 차서 결국 또 나 자신이 더 좋아져 버리는 선순환의 이기주의 고리가 완성되었다.


먼 훗날 모두를 구분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듯 무조건적으로 아이처럼 사랑해야지. 최근 내가 한 생각 중 가장 기특하고 아름다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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