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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ul 03. 2019

정신과에 대한 감정기억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고

새벽에 잔 이후로 생체리듬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몸에 못 할 짓을 한 기분이 든다. 하루 종일 멍하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제 정확히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컴퓨터/스마트폰을 많이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전자파 디톡스 상태로 지내보자고 다짐했지만 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글을 쓰고 싶은데 역시 컴퓨터가 편하다.


백세희 작가님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었다.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 또 있다니. 그녀가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감정이나 생각에 예민하게 성찰하는 점, 깊은 자기혐오에 시달린다는 점. 그러면서 자신의 단점을 타인에게 적나라하게 비추는 용기를 가질 만큼 타인과 무언가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점, 타인보다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점 그리고 떡볶이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점, 비슷한 점이 많아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와 다른 점도 아주 많았다. 마음이 좀 아팠던 건 나보다도 훨씬 이상이 높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스스로 자기를 벼랑 끝으로 미는 일이 많았다. 나도 극단적인 편인데 그녀의 자기 검열은 너무 혹독해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또 그녀는 나와 달리 직업으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게 명확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녀를 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보는 그녀는 분명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과는 아주 많이 다르리라. 그냥 씩씩한 척 밝게 많은 시간을 잘 살아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섣부른 위로나 이해는 하고 싶지 않았고 다만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마구 사랑해주고 많은 이야기를 하면 재밌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기분부전장애를 지니고 있느라 고백했다면 난 그냥 흔히 생각하는 그런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야 하나. 고2 이후로 우울증에 시달린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때 내 상태는 '떡볶이도 고추장 수제비도 냉면도 초콜릿도 먹고 싶지 않아.' 할 만큼 아아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삶의 생명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말라죽어가는 식물 같았는데 또 걸어는 다니고 어찌나 흘릴 눈물을 끝도 없이 나오던지 주위의 눈치가 하나도 살펴지지 않을 만큼 아무 의욕이 없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좋게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남의 눈치를 덜 보게 된 것 같다. 


작가님은 정말 꼼꼼한 것 같다. 자발적으로 상담을 녹음하고 정리를 하다니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다. 이런 작가님의 성향 덕에 좋은 책이 한 권 만들어진 건 참 세상에 기쁜 일이지만 이 것 역시 자신에게 조금 가혹하다. 책을 읽다가 나의 상담 경험을 돌이켜보았는데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건 많지 않다. 



내가 정신병원에 처음 갔던 사유는 '학교 다니기 싫어요.'였다. 자살시도 후 나는 무작정 학교 가기를 거부했다. 딸의 상태가 보통의 방식으로 '정상적'으로 돌아올 리 없을 거란 생각을 한 부모님은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정신과로 날 데리고 가줬다. 사실 4-5개월 전에 동네 정신과에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상담이랄 것도 없이 약만 받아 왔다. 약 봉투를 발견한 아빠가 '그런 거 먹으면 안 돼. 그런 데 왜 가.' 란 식으로 말해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웬만한 방법으로 난 정신과를 가기 힘들었을 거고 내가 살아야 하고 정신과를 제대로 가고 싶단 마음에 그런 일을 벌였는지도 모른다. 뭐 완전히 의식적으로 한 일은 아니다.


그날 처음 본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끼시고 냉철한고 객관적인데 그래도 묘하게 온화한 인상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교 가기 싫다고 해서 불량 학생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모범생 같은 아이가 들어와서 의외였다."


마지막 대화는 이거였다.


"죽고 싶은 적 있었니?"
"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드니?"
"네 그러진 않을 거지만 가끔요."


그래서 나는 정신병원에 무사히 입원할 수 있었다. 차트의 내 병명은 "depressive disorder"란 사실도 그때 알았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여러 가지 검사를 오랫동안 했다. 기억나는 건 문장 검사, 웩슬러 지능검사, 로르샤흐 검사 그리고 마지막에 상담. 검사를 하는 당시 내가 우울증을 살짝 잊을 만큼 흥미로웠던 것 같다. 열심히 적극적으로 검사에 임했다. 그때 나의 상담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상담 끝나고 가볍게 던지듯 내게 하던 말이 인상 깊었다.


"너 되게 성격 좋다. 되게 쿨하네."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거 보면 내가 그 말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를 알고 보면 성격 좋고 쿨한 사람이야라고 내면에 형상화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내게 정신과 한 달의 기억은 파라다이스였다. 완전한 휴식을 맛볼 수 있었고 현실에 없을 이상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이 자리한 격리된 아름다운 세상. 막말을 하거나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배려 넘치고 친절한 사람으로만 이루어진 작고 있을 수 없는 세상. 처음에나 울적했지.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이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이 병원을 나가서 내가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실제로도 현실에 적응을 못하고 병원으로 돌아오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고.


거기서 참 책을 많이 읽었다. 문창과 대학생 오빠가 열심히 책을 읽는 내가 기특하다며 미하엘 엔데 책을 빌려줬었다. 


좀 신기한 건 내가 이제까지 만났던 상담 선생님은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환자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세요? 그렇게 불안할 땐 그곳에 있는 생각을 해보세요. 정도의 가이드는 했으나 이 책에서 읽었던 것만큼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내 생각을 정정해주지도 않았고 내 상태를 그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짚어주지도 않았다. 내가 당시 미성년자라서 그러했을 수도 있고 상담 스타일은 다 다르기도 하고 하겠지만... 그래서 상담을 해주신 건 너무 고마운데 이 관계가 그저 '선생님과 환자구나.'란 생각이 강해져서 더 이상 상담을 받고 싶어 지지 않았다. 나는 친구가 필요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그런 예전의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건 상담이 아니라 누군가와 진실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거란 생각도 든다. 요새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자신의 이야기로 솔직하게 담담하게 고백하고 나누는 책, 인생이 그냥 거기 들어있는 책을 읽는 게 좋다.


그런 책들은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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