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윤 Jul 04. 2019

좋아할 이유는 어디에나

단지 자세히 보지 못했기 때문

어릴 적엔 좋아할 만한 사람만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 특권을 부여하듯 좋아할 만한 사람을 선별하곤 했다. 품질 검사도 아닌데 까다로운 54가지 기준에 통과한 A급 친구 또는 애인이 누가 될지 신중히 고르는 코미디가 이어졌다. 


'고물식 인증을 통과하셨으니 당신은 오늘부터 제 구역의 사람 아니 고물나라 정식 시민권을 발급받은 시민입니다. 당신은 오늘부터 사랑받아도 됩니다. 땅땅땅' 


딱히 좋아할 구석이 없는데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을 보면 뻔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정은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닌데 어딜 날로 먹으려고 해. 노력도 없이 타고난 매력도 없이.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가식과 형식이 아닌 진심을 다해 나름 객관적이라 생각하며 평가 내렸다. 그게 더 잔인하다. 좋아할 수 없으면 적나라하게 '당신이 싫어요. 내일도 싫을 것 같고요 좋아할 구석을 만들어 오라고요.' 요구한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


나를 보는 그대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그 사실을 왜 이전에는 조금도 몰랐을까.


까다로운 척 사람을 가리다 보니 결국 주위에 몇 사람 남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이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좋아할 구석이 가득한 사람으로 한정되어 버렸기 때문일까? 요샌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좋다. 몇 시간 이야기하다 보면 미소가 입술에서 떠나질 않고 톤이 자꾸 올라가고 마구마구 행복해진다. 상대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좋은 사람이고 사랑스럽구나. 이 아이는 이래서 좋고 저 아이는 이래서 좋고 각자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보면 시간이 삭제되어 있고 포옹하고 헤어지는 길에 나도 꽤 잘 살았구나 싶다.


나에게 관대하게 조건 없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사실 좋아할 구석은 어디라도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같은 행동과 말투를 보고도 따뜻하게 해석할 수도 차갑고 무례하게 해석할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사람이 좋아지고 정확히 같은 이유로 사람이 미워진다.  아집과 편견 자아의 감정상태에 휩싸여 내게 이득이 될만한 행동을 쏙쏙 골라 되었던 게 아닐까? 상대방의 아무 뜻 없는 말과 행동을 곡해하고 혼자 상처 받고 선 긋고 결론 내려 버린 거 아닐까? 넌 좋아할 구석이 없어. 수많은 방어기제를 생산하며 결국 자신을 꽁꽁 옭아맸던 게 아닐까?


단지 마음을 열고 자세히 보지 않았을 뿐. 사람은 누구라도 좋아할 구석이 있다. 좋아할 이유는 모든 것에 있다. 단지 찾고 싶은 지 찾고 싶지 않은 지 나의 마음에 달려있을 뿐.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과에 대한 감정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