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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ul 24. 2019

얕은 대화는 어렵습니다

대화도 편식만 할 수 없기에

나는 여자애 치고 학창 시절 같이 다니는 친한 무리란 게 특별히 없었다.  대화는 일대일이 편하고 친구는 늘 각자 만났다. 나의 친구들은 서로 안면이 있더라도 다 같이 만나는 경우가 없었다.  모임 자리에 참석하거나 단체 생활하는 걸 끔찍이 싫어했다. 나의 수많은 단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예 마음을 둔 모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학시절 봉사동아리를 했는데 꽤나 애정을 가졌고 그 동아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참 좋아했다. 물론 3학년이 되고 동아리에서 사귀던 오빠랑 헤어지면서 더 이상 동아리방에 들를 수 없어졌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또 의외로 첫 직장생활에서 사람들과 무척 잘 지냈기에 잘 적응하는 나를 보며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이상하다. 왜 나는 여럿이 만나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지?'


물론 증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모임의 실패 경험이라고 부를만한. 여러 명의 사람을 지속적으로 만날 때 어색하거나 불편해서 견딜 수 없었던 감정의 기억. 동창회를 참석하거나 꾸준히 함께 만나는 어떠한 동기가 없다는 점. 면접에서 '친한 친구들 많아요?' 부류의 질문을 받으면 식은땀이 나고 기가 죽곤 했다. 


그동안은 그냥 기억에 의존해서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정확히 내가 무얼 불편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최근 이례적으로 각각의 사람들과 모두 친밀하지 않은 모임을 두 번 정도 가지게 되었다. 

하나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인데 고등학교 시절에 나름 친했고 애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을 제외하면 만난 지 상당히 오래되어 어색할 게 그려졌고 게다가 그 멤버로 만나는 건 처음이라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머지 하나는 남자 친구의 연구실 모임이었다. 교수님도 오시고 사람이 40명도 정도 모인 자리에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절대 못 간다고 징징되거나 단박에 거절했을 텐데 그날의 나는 흔쾌히 'Yes' 까짓 껏 한 번 가보지 뭐. 


두 모임 다 좋았다. 전혀 걱정할 만할 일도 기분이 상할 일도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많이 웃었고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이 투닥거리며 실없는 대화를 편안하게 했다. 연구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도 내 주변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나 다들 좋은 분들이고 내게 친절히 대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지쳐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마음속 뜻 모를 공허함이 차올랐다. 사람들과 웃고 떠든 게 거짓도 가식도 아니었는데 묘한 불만과 슬픔이 느껴졌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하게 되는 대화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대화를 하다 만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 아니 세 명 이상의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면 딱 누구 한 명에게 집중하기 어렵다. 특별히 공통적으로 관심 있는 분야나 이야기 주제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보통 다수의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고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자연적으로 가벼운 신변잡기나 누구나 다 알만한 안전한 연예인이나 날씨, 그날의 뉴스 정도로 주제는 한정된다. 같은 이야기라도 여러 사람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더 검열을 하게 된다. 누군가 불편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국 비슷한 대화를 하게 되고 만다.


그러니까 항상 그렇지 않겠지만 다 같이 만나면 대화는 그냥 가볍게 심각하지 않게 웃다가 끝이 난다.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즐거웠다는 감정뿐이다. 누구 하나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는 대화는 하기가 어렵다. 


나는 그런 대화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겐 그런 대화가 참 어렵다. 그 사람 이야기를 파고 파고 또 들어갔을 때 마음을 나눴다고 안심한다. 감정의 교류가 적은,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일상적이고 담백한 대화는 내게 무엇보다도 어려운 과제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텅 비어지는 그 기분이 몹시 싫어 단체 만남을 기피해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선 긋지 않고 방어적으로 날을 세우지 않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나는 온 마음을 열고 사랑의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대하려고 노력했으나 역시 얕은 대화는 싫었다.


그러나 내가 싫다고 해서 가치가 없거나 잘못된 건 아니다. 이전의 나는 그런 대화는 모두 쓸모없고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해서 혹은 두려워서 쳐내며 살았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순간 즐거울 수 있고 여럿이 만나는 걸 피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나다 보면 또 내가 몰랐던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겠지. 


그동안 대화를 편식했던 거다. 좋아하는 부류의 대화만 하고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대화는 입에 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가끔은 좋아하지 않는 대화도 있는 그대로 먹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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