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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Aug 13. 2019

나의 모든 이별의 이유

결국 타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 관심이 없었던 셈이다.

힘들이지 않고도 타인의 매력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재능이 있었다. 나는 자주 타인에게 매료되었다. 열렬한 사랑의 증거를 가지런히 모아 정갈하게 정렬할 수 있었다. 나의 모든 사랑에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했다. 낯간지러운 언어로 사랑의 서사를 밤새 재잘 될 수 있었다. 본 적 없지만 아마 나의 눈빛은 전형적으로 사랑에 빠진 감각을 재현하고 있었을 거다. 따뜻하고 온화하며 위태롭고 금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신기루 같은 찰나의 눈빛.


모든 속성엔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필연적으로 무언가로 인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정확히 같은 이유로 그 사람이 싫어지고 만다. 열렬했던 초기 사랑에서는 인식조차 되지 않을 만큼 작디작은 점들은 시간이 흐르면 무럭무럭 자란다. 귀여운 주근깨는 오서방의 점이 된다. 아주 사소한 불편함과 조금의 낯섦은 시간이 지날수록 받아들이기 버거운 불쾌감을 주고 다름은 견딜 수 없는 이질감으로 안착된다.


결국 나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던 셈이다.

다른 이에게 보일 수 없는 은밀하고 깊은 속내를 탐구하고 두드렸다. 진심을 다해 그 사람을 알아가고자 했고 그 사람의 본질에 가닿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를 부정하거나 다른 모습이 되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결국 내가 좋아했던 이유는 늘 변질되었고, 좋아할 수 없는 부분이 도드라지면 항상 그들을 떠났다.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경계선 안에서만 그들을 사랑했다.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껴안으며 사랑한 적 없었다. 부분적으로만 진심을 다해 사랑해 왔던 거다.




지금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열 번 넘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 어색함에서 나온 질문이지만 힘들이지 않고 진심으로 대답했다.


"H는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거든요. 무얼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의 옆에서는 그냥 내가 될 수 있어요."


술을 한잔 걸친 타인들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닌지 심드렁하며 그대로 넘겼지만 이건 내 세계에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했던 타인들 또한 내게 기대하는 모습과 유달리 좋아하는 모습, 원치 않는 모습, 실망하는 모습을 내게 보이곤 했다. 그게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서 형벌이라 생각한 적 없었다. 숨 쉬듯 자연스러웠고 그게 내가 아는 사랑의 전부였다. 어떤 날에 우리의 사랑이 커졌고 어떤 날엔 우리의 사랑이 식어갔다.


조건부 사랑이 휘두르는 변덕이 두려웠던 나는 그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툭-  폭탄을 몇 차례 투하했다. 그는 그 폭탄을 배경의 일부로 여겼고 그냥 거기다가 두었다. 이 사람 세계에서 나의 폭탄은 점화가 되지 않았다. 그건 더 이상 폭탄이 아니었다. 그의 세계에서는 오버하지 않아도 되었고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어떤 모습의 나라도 사랑해 주었다. 내 사랑이 어떤 모습이라도 받아들였다.


여전히 이 사람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사랑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아주 가끔 그에게 거슬리는 부분을 발견하곤 한다. 그의 사랑을 생각하면 내 사랑이 미숙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 작은 불편감을 떠나기 위한 빌미로 삼지 않는다. 나는 자신도 타자도 세상도 조건 없이 편견 없이 온전히 총체적으로 사랑해주고자 연습 중이다. 사랑의 진폭이 크지 않아도 괜찮다.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사랑보다 크고 충만하다.


지금의 사랑으로 깨닫게 된 지난 모든 이별의 이유는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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