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글을 쓸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과거의 일기장을 반대로 넘겨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든 글은 미래 높은 확률로 길을 잃고 무언가를 원하는 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 무언가를 집요하게 찾아 헤맬 나를 위한 단서로 쓰이곤 했다. 동시에 지금 여기 내가 있다고 끝없이 재잘거리며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의 외침이기도 했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든 이후에야 사랑의 깊이와 다 알려주고 싶어 안달 나는 마음과의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아도 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새도 종종 잊곤 한다. 머릿속의 감정과 터져나갈 것 같고 내달리는 감정을 표현하고 알아줘야 돈독해진다고 오래도록 믿었다. 마음속에 오래 묵혀도 충분한 역할을 해낸 마음이 있고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 더 아름다울 감정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루의 기록이 사라질까 크게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쓸만한 가치가 있는 글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긴커녕 더욱 자라 어느 날 폭발하고 말 것이니. 매일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와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절제 없이 마구 쏟아낸다고 해서 글이 더 빨리 누군가에게 가닿을 리도 더 쉽게 몰입될 리도 없었다. 아름다움에는 항상 서슬 퍼런 차가운 칼날이 동봉되었다. 감정을 100% 담으려 애써도 글이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덜어내기가 필요하다. 표현의 덜어내기. 내면의 단단함을 측적하는 과도기가 온 거고 분명 변화할테지.
조잡한 문장에 개연성이 결여되더라도 쓰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하다면 글 자체의 생명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는 표현 방식에 달려있겠지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글을 쓸 이유가 충분하다.
사람은 미완의 존재이기에 조금씩 어디론가 나아가겠지만 죽을 때까지 흔들릴 게 분명했다. 운 좋게 가끔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고마운 책을 발견하지만 찾고자 하는 모든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자신의 받아든 몫의 공백을 채워나가고 흐뭇한 미소를 띠우는 거다.
조금 더 담백한 문체로 감정을 반쯤 덜어내고 원래의 메시지를 그대로 담은 글을 눈치 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사람이고 싶다. 마음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맬 때 잠시나마 내 글이 누군가의 발길을 붙들고 토닥토닥 등허리를 다정하게 쓸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