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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Oct 10. 2019

우울, 널 버리지 않을게

우울한 날 역시 기록받을 권리가 있나 봐.

하늘이 흐리멍덩한 건지 청명한 지 도무지 헷갈리는 나날이다. 몇 시에 하늘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맑기도 흐리기도 한 가을날. 온통 무채색의 회색빛 필터를 씌운 듯 색이 바래져 보이는 낯익은 주변 풍경 사이 놀랍게도 이질적으로 따사로운 햇볕이 공존하고 있다. 


가을날이 이토록 추웠었나. 그랬던 것 같다. 가을은 유독 짧았고 겨울이라 말하기엔 모자란 추위가 이어지는 나날이 쓸쓸히 이어졌다. 그 와중에 따스한 햇볕과 파란 하늘이 있어 위로가 되는 그런 계절이었지. 


좀처럼 삶에 찰싹 들러붙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뜬 채 의식의 흐름대로 주인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런 내 상태를 뭐라 딱히 표현한 길도 없어 머저리처럼 말을 더듬었다. 그러다 역시 좀 우울한 것 같아라고 덧붙인다. 평균을 내본 적 없지만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최근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고 호기롭고 섣부르게도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와요. 요새는 그렇게 크게 이유 없이 우울하진 않아요.'라는 위로를 했었지. 진심이 아니었던 건 아닌데도 이런 나를 비웃듯이 우울은 또 날을 찾아왔다.


주요 증상은 '자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였다. 극심하게 괴로운 일도 절망적인 일도 없고 화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저녁 시간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게 지나치게 괴로웠다. 그래서 마냥 두 손을 놓고 모르쇠 하다 보면 날 불쌍히 여기는 동반자님이 김치와 양파만 들어간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인생의 즐거움을 수집하는 발랄한 수집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구멍이 뻥 뚫렸는데 현실감각을 느낄 법한 모든 것들이 다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갔다. 아무것도 잡지도 담지도 못하는 희멀건 반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다지 아프진 않았다. 아프지 않아 괴로웠다.


믿기지 않아 우울의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의심되는 후보들은 꽤 찾았다.


명상을 그만두어서, 요가를 하지 않아서, 큰일이 하나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 여행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여행 내내 괴로워해서. 일상의 리듬을 잃어서, 해야 할 일이 없어서, '걱정거리가 없어서 만들어서 하고 있다.'는 가설도 설득력이 있었다. 자소서와 면접을 앞둔 취준생처럼 책 입고 문의를 하는 중이어서,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책엔 오타가 너무 많은 걸로 밝혀져서, 퇴보하는 기분이 들어서, 아니 다시 이렇게 우울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아서.


마음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질 거야.'라는 방관자적 입장을 보이는 태도와 무시하고 뭐든 해야지 행동파가 조용한 전쟁을 벌였다. 그 둘은 모두 싸울 에너지조차 없어서 크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저마다 주어지는 순서에 조용히 팻말을 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문득 SNS를 확인하고 타인의 글을 확인하는 행위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와 비교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 그만두기로 했지만 아침에도 무심히 창을 켰다 앗차 하고 홈 버튼을 눌렀다. 


명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차근차근 가이드에 맞춰 10분간 명상을 했다. 생각에 갇히지 말자. 생각에 갇히지 말자. 생각에 갇히지 말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는 법이라는 동영상을 보았다. 기분 좋은 감정을 찾자. 기분 좋을 일에 집중해 보자. 감사하자고. 그런데 감사함에도 종류가 있었나 뭐든 튕겨내는 지금의 상태에서는 진심으로 감사한데도 감사하지 않았다. 생각을 말자. 기분 좋아질 만한 행동을 하자.


냉장고에 차갑게 식혀 둔 미역국과 밥을 끓여 먹고 음악 없이 샤워를 하고 오래도록 긴 머리를 말리며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청소기를 밀고 짐을 챙겨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던 집 근처 독립물을 판매하는 북카페에 갔다.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있다. 재즈,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럽게 진열된 포근한 공간, 큰 창문 앞자리, 색깔별로 섹터별로 정리해있는 책장, 맛있는 라떼, 친절한 주인 분, 책장에서 사야지, 사야지 했던 책을 발견하고 읽었다. 묘하게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가장 힘이 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여러 번 생각한 적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우울할 때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우울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은 동시에 나 같은 사람이 주변에 없어 슬펐다. 그다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죄책감이 들었고 나는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다시 더 쪼그라들고 만다. 다음 주 내 스케줄은 하루도 빈 곳 없이 꽉 차 있다. 괜찮을까? 이렇게 다치기 쉽도록 연약한 마음에는 별 것도 아닌 자극들이 잽이 되어 날아들어왔다. 나는 애써 그 잽들을 재현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저 '우울할 때 크게 위로가 안 되는 만남'이라고 퉁쳐보려 애썼다. 그러면 내 마음은 또 한 단계 닫혀버린다. 어떻게 열었던 빗장인데 한순간에 닫아 버린다고? 인생의 많은 순간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쓰자. 대신 쓰자. 말할 수 없으니 쓰는 거야. 예전처럼 그냥 쓰자. 아무 생각 말고 쓰자.


쓸 수 없었다. 좋은 말을 하고 싶었고 걱정을 끼칠 수가 없었다. 자의식 과잉의 내 글이 부끄러웠다. 아, 있어 보이려고 또 원래 나보다 좀 멋져 보이려고 망설였구나.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가끔 구리다. 


우울이 내 삶에서 뒤편으로 사라지면 아니 숨어있으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된듯한 기분에 빠졌다. 더 이상의 우울로 인한 슬럼프는 없을 것처럼 취해 있었다. 그러니까 우울한 글은 쓰지 말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날은 그냥 지워버리자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글.


미안 우울, 넌 역시 가끔 나를 찾아오고 괜찮아 보이는 날들이 오래 지속되더라도 언제 한 번쯤 찾아와도 이상할 건 없고 사실 그게 그리 절망적일 필요도 없을 텐데. 나는 네가 무서웠나 보다. 내가 우울해지는 게 무서웠어.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네게 잡혀있을 순 없지만 네가 찾아왔으니 나는 꽉 안아줄게. 언제든지 와. 그것조차 익숙해지는 게 삶의 한 부분인가 봐. 널 버리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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