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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Oct 05. 2019

때때로 누군가와 처음 만나면

과해지고 만다.

조금 지나쳤나. 누군가와의 만남 후에 바로 반추하는 버릇이 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가 흘러나오든지 팟캐스트의 유익한 이야기가 반쯤 귀를 지나가고 사람이 가득 찬 버스 맨 뒤의 한 칸 앞자리에 몸을 구겨 넣고 창가가 아닌데도 창문을 바라본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널 무렵 한 번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날의 달과 공기와 온도를 떠올리면 그 만남은 더욱 오래 박제되곤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됐던 걸까?
여러 실험과 우연한 경험과 수없이 변주되던 고민 끝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살아온 인생을 그 사람을 통해 듣는 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운이 좋은 날엔 죽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여지없이 멀리 가 버린다. 이쯤 담백한 만남으로 마무리될 기회란 걸 알면서도 핸드폰 창에 뜬 시계를 애써 무시하며 친절한 척 묻는다.


"시간 괜찮으세요?"


거기서 안 괜찮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은 나와 닮은 듯 다른 두 사람과 만났다. 이상한 조합은 잘 녹아들었고 익숙하게 우울증과 또라이 아픔 인생의 의미와 허무주의에 대해 익숙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를 묶을 수 있는 말은 '시니컬'이었다. 한 사람은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살짝 잡고 언젠간 놀랍게도 살아있길 잘했다. 자신이 좋아지는 날이 있다고 무리가 될 걸 알면서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직은 그 사람을 포옹해줄 용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둘이 남게 되자 아주 잠깐 들었던 정보를 유추해 그 사람의 인생을 기억 속에 재현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끝일지도 모를 기회, 오늘 그 장소는 더없이 그러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그는 그 모든 걸 다 알면서도 기꺼이 적당한 속도와 양으로 대답을 해준 후 잊지 않고 내게 간간히 질문을 해주었다.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충분한 경험을 했고 나는 우리가 지극히 정상이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동의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자신에게 가혹해지지 말라고 했고 그는 그러기엔 자신을 너무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꼭 그렇다. 충분히 열심히 잘 살고 멋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학대하고도 학대하는지 모른다. 그럼 난 굳이 굳이 그 사실을 꼬집어 말해주고 그들은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또 만나게 되는 거다. 아니 나는 사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역시 또라인가.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관심사도 삶의 방식도 다른데 어딘가 닮아있는 사람 게다가 내게 호의를 지니고 열심히 대답을 해주는 사람에게 적당히 호감을 갖기가 어렵다. 문득 내 마음에 너무 많은 사람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몇 시간의 대화로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언제나 끝까지 듣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입이 바싹 마르도록 대화를 하고 나면 질문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도 먼저 자리를 파하자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색하게 때를 넘기고 정말 보내줘야 할 때가 돼서야 헤어짐을 고한다.

 

모든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늘까지 버티고 의연하게 살아온 매일매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도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루의 삶을 사는 그 모든 이야기가 애틋해서 그만 안아주고 싶어 진다. 물론 그건 정말 너무 나가는 거니까 간신히 참아낸다. 왜 한국은 포옹이 인사가 아닌 거야란 작은 불만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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