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흐려지는 날에는 지난 글을 읽는다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아니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인지 신기할 만큼 좀처럼 남아있지 않는 단서를 샅샅이 찾아본다. 불투명한 백지처럼 자신에 대한 일관성이 현저히 결여된 어느 날. 어떻게 웃고 어떻게 말하고 어떤 사람을 좋아했지? 나라면 이 상황에서 무슨 표정을 지었어야 했지? 무 대본 다큐멘터리 인생인 주제에 캐릭터 분석을 하고 앉았다. 이게 말이 되나. 창피하니까 티는 내지 않은 채 그냥 대답한다. '몰라. 이상하게 요새 컨디션이 안 좋아. 곧 나아지겠지.'
그런 날에는 지난날에 적어둔 어떤 글이든 읽어본다. 익숙한데 친숙한 말투의 알 것 같지만 내가 쓴 적 없는 것 같은 그 이상한 글들. 새삼 내가 어땠는지를 다시 배운다. 이런 캐릭터구나. 나란 사람.
이럴 때 보면 성격 개조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닐지 몰라. 물론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인간이 되는 게 쉬운 거란 말은 절대 아니야. 역시 확실히 엄청 이상해 요새.
더 쓰면 더 이상해지니까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