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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Nov 23. 2019

연애가 쉬웠던 이유는

연애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못 하는 게 참 많다. 그중에서도 일생을 통틀어 가장 오래 깊이 했던 고민은 '진로'이다.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몰랐다. 자주 바뀌더라도 어렴풋해도 좋으니 힌트라도 얻고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하고 싶은 일이 꽤 뚜렷했던 사람은 늘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몇십 년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 분야에 열정적으로 매료되어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찾는 거지? 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만 있다면 많은 걸 포기해도 좋았다. 간절하고 절실했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일을 너무나 찾고 싶어 하기에 오히려 못 찾는 거 아닐까?


 연애를 잘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좋아하는 남자들이 다 내게 넘어온다거나 이별을 한 적이 없다거나 연애를 하면서 갈등과 고민의 순간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 역시 짝사랑을 했고 많은 실수를 했고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상처 받기도 했다. 원치 않는 이별도 여러 번 했다. 물론 이불킥할 유치한 일화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하는 건 연애였다. 아니 연애만큼은 어렵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고 쉬웠다. 나는 단 한 번도 연애를 내 인생의 우선순위로 여기거나 힘을 쏟거나 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게 연애만은 순조롭게 잘 풀려나갔다.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남자들을 만났고 도장깨기처럼 점점 더 나은 연애를 했다.(뭐,특별한 예외도 있지만) 인생의 모든 운을 연애로 쓰는 것 같았다. '아니. 이제 그만 연애는 됐고 진로나 알게 해 주세요!' 


그게 내 맘대로 될 리가. 내가 알게 된 인생의 비밀 중 하나는 '너무 원하는 건 원하면 원할수록 이상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고, 기대한 적 없고 없어도 그만인 일은 멋지게 품으로 날아들곤 했다. 물론 어렸을 때는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 물론, 내가 연애를 잘할 거라는 기대도 전혀 없었다. 


돌이켜보면 늘 연애가 안중에도 없는 다른 무언가를 원하던 상황에서 내 연애가 시작되곤 했다. 


 나의 첫사랑은 내 삶이 가장 크게 흔들리던 시기에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남자에 관심도 없었고 남들처럼만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이었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게 괴로웠고 감정 조절하며 버티기가 어려워 곧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햄릿도 아닌 주제에 죽느냐 사느냐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시간이었다. 연애는커녕 내 앞가림하기도 힘들었다.


 대학시절 학과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딘가에 소속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나는 동아리에 들어갔고 사람들과 어떻게 오래도록 친밀하게 잘 지낼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었다. 괜히 신입생 시절에 어설프게 무리 안에서 연애를 했다가 다른 사람과 껄끄러워지거나 친해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그 안에서 남자를 만날 생각 같은 건 없었지만 역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밖에도 취업 걱정에 답이 안 나와 한숨을 푹푹 쉴 때, 엄청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누군가를 만날 틈이 없을 때, 여행에서 너무 지쳐 혼자 있고 싶었을 때 연애할 여유도 마음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누가 날 놀리듯이 늘 사랑할만한 사람들이 나타나곤 했다. 


가끔씩 외롭거나 연애 생각이 슬쩍 스쳐 지나갈 때, 소위 말해 연애 하기에 참 좋을 것 같을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내가 좋다거나 내가 좋아한다거나 관심이 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일을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연애는 내가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잘 굴러갈 것만 같았다. 오히려 절대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시기 혹은 절대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은 시기가 찾아오면 또 사랑을 시작할까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서 흔히 묻는 '만나는 사람 있어요?' '왜 없어요?'라는 콤보 질문이 무척 불편하고 우습다. 연애가 필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하지 않는 게 기본값입니다만, 사람은 혼자라고요. 오히려 경험상 '연애를 꼭 해야지. 연애하고 싶다. 왜 나는 연애를 안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수록 멀어지는 게 연애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연애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연애는 그렇게까지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니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게 안될 거란 것도 안다. (내가 여전히 진로의 답을 찾고 싶어 놓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내가 가진 유일한 비법은 연애를 하고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든 어려움에도 연애가 제법 쉬웠다는 거다. 힘을 빼면 연애가 한결 쉬워진다.


연애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힘 빼고 있는데도 여전히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아서 불안해진다면, 괜찮다. 진짜로 연애는 중요하지 않은 거라서 평생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손해 보는 거 하나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런 말을 하면 다음 글을 안 읽을 것 같지만 진심이다) 더불어 그런 중요하지 않은 연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 매거진 역시 하나도 안 중요하니 농담처럼 읽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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