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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ul 28. 2020

내가 하고 싶은 것의 정체를 찾다! 본질대화

본질대화 전문가가 될 거야


인생 상위 목표



30분 전까지 스타벅스에 앉아 Grit이란 책을 읽고 있었다. 인생 상위 목표를 적고 하위 목표를 적어가고 있을 때였다. 늘 그렇듯이 나의 인생의 목적은 이전과 거의 유사했고 매우 추상적이었다.



☆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 사람들이 나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란다.

☆ 일상 속에서 본질대화를 하고 의미 있는 기쁨을 느끼는 데 일조하고 싶다.|

☆ 믿을 만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내 열망은 늘 같았다. 지금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열려 있는 소규모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커뮤니티를 통해 일상을 확장하는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 커뮤니티가 무엇이 될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길 원하는 건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 마음 깊은 한구석 직관적으로는 알 것도 같았지만 구체적으로는 설명할 수없이 흐릿한 실체 없는 유령 같았다.


구체적인 목표도 하위 목표도 도출할 수 없겠다, 꿈같은 낙관론자의 희망 정도로 느껴졌다.


그러나 곧 여러 생각의 단계를 거쳐 내 인생을 살아오며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것, 나를 나답게 만든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내게 우선순위가 되는 것 동시에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뭔 지 깨달았다.



'본질대화'







나는 당신과 본질대화를 하고 싶다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천직을 찾지 못해 괴로워했다. 내가 SNS에 글을 쓰고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게 묻곤 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건가요?'


내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즐거웠고 평생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신춘문예에 등단하거나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멋진 문장을 읽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문장을 훔치고 싶기도 했지만 글을 최고로 잘 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사람들이 내 글을 사랑해 주길 바라는 욕망이 공존했다. 이중적인 이 마음이 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고물님은 멋진 에세이 작가가 될 것 같아요.'


나의 글을 좋게 봐주신 너그러운 한 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쁘긴 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글만 떨어뜨려 생각하면 브런치에 무언가를 꾸준히 쓸만한 열의조차 없을 만큼 난 글쓰기에 열정을 지니지 않고 있었다. 뭐 7년 넘게 글을 쓰지 않던 기간은 생각해보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더 이상 나만의 일기장에 무언가를 적지 않는다. 부끄러운 글이더라도 SNS에 올린다. 글을 택한 건 내가 말을 잘하거나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글 쓰는 게 편했다. 결국 나는 아직 내가 만나지 못한 어떤 누군가와 일상에서 나눌 수 없는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무인도에서 유리병에 편지를 담아 망망대해에 던지는 심정으로 나와 비슷한 욕구를 느끼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이 글이 닿기를 늘 기도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나는 당신과 '본질대화'를 하고 싶다.
'본질대화를 원하고 잘하는 당신을 만나고 싶다.'






본질대화 전문가




생각해보면 언제나 본질대화는 내게 속해 있었다.

내가 만든 책 저자 소개에 이런 말이 있다. '소규모로 모여 영혼의 대화가 오가는 순간이 삶의 활력소'


여행을 다녀와 모 채팅 앱 소개 이런 말을 적은 적 있다. '본질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남자와 여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말에도 나의 이상형은 오래도록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와 '영혼의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이건 시간도 아니고 자연스러움도 아니고 대화의 질과 종류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에 나가서 스피치를 잘하는 건 절대 아니고, 말 주변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논리적인 말을 하거나 설명을 잘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전달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1:1대화에 강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일상적 수준을 넘어 삶의 가치관이나 무의식, 생각 등 깊고 진솔한 대화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 이게 내가 말하는 영혼의 대화이자 본질대화의 정체이다.

상대가 오랜 대화 이후 헤어질 때 '오늘 처음 만났는데 이상하게 편했어요.' '원래 이렇게 처음 본 사람이랑 대화하는 경우가 없는데 이상하게 말하게 되네요.' '너와 얘기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가 되었어.'라는 칭찬을 하면 그날의 행복감이 내게 오래오래 남는다.

단어를 구체적으로 적지 못해 맴돌던 그 대화의 실체는 바로 본질대화였다.




이 단어는 얼마 전 문보영님의 에세이에서 발견했다.


"본질 대화를 해!" 인력거가 외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술을 마셔야 그런 대화를 하잖아." 나는 주저한다. 대화를 하고 싶은데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없다. 돈이...없다. 그럼 술을 안 마셔도 본질 대화를 하는 사람을 찾아. 네가 너무 너 자신인 채로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해. 대화를 할 때 돈이 안 드는 사람을 만나. 인간이랑 대화하다가 재산 거덜 날 일 있냐." 인력거의 눈빛이 진해진다.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 좋아해 놓고, 본질 대화하는 실사판 인간만 보면 이물감을 느끼는 사람은 걸러."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문보영, 16p



거기서도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없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감이 왔다.

이것은 역시 사전에 없는 말이며 아직까지 흔히 쓰는 용어도 아니다. 이 '본질 대화' 정체는 이 매거진을 통해 밝혀보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본질대화' 전문가가 돼보려고 한다.







P.S.
나는 이 생각을 하자마자 너무 기뻐 쏟아지는 비를 뚫고 신나는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이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가끔 굉장한 마이너한 취향을 갖은 것으로 판명되기도 하니까. 허나 확실한 건 현재의 나를 만든 건 '본질대화'이며 과거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본질대화'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겐 이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매우 흥분하고 기쁜 상태이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다른 무인도의 본질대화러가 있다면 작게나마 신호를 보내주길 간청한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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