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윤 Sep 13. 2020

대화는 오해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오래도록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이상형이었다. 큰 노력 없이도 의미있는 대화를 건네게 되는 사람, 취향이 판이하게 갈려도 관심사가 달라도 무리 없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여자와 남자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다던데, 대화가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맞춰주고 있다는 증거라든데, 말이라는 건 지나치게 오용되어 상대방을 찔러 결국 상처를 남긴다던데, 대화의 무용성과 냉소주의는 해가 지날수록 깊어졌고 침묵이 그 자리를 메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중간이라도 갈 수 있다던가,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낫다든가, 확실히 모를 땐 차라리 침묵해라 등의 현명한 조언. 침묵이 지혜라는 걸 알고나서도 대화가 피곤하단 걸 인정하면서도 내게 관계의 시작은 대화이다. 사랑이 오는 통로는 대화 뿐이다. 대화 없이도 위로는 되겠지만 여전히 대화는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외롭기에


누군가를 만나도 외로움을 덜어낼 길 없다는 걸 이해한 순간 비로소 어른으로 향하는 길목이 열렸다. 사람이란 다소 복잡한 존재는 자기 몫의 외로움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농도로 각자의 속도로 조금씩 깎아내며 버티며 살아가는 게 삶의 본질이다. 


세상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깨달음에 닿으면 숨이 막힌다. 우리는 단절된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내게 떠오르는 감정, 내가 생각하는 방식, 내가 느끼는 감각을 원형 그대로 왜곡 없이 전달하는 행위는 불가능하다.불완전한 언어라는 상징에 기대어 어떻게든 자신을 표현하고자 애쓰는 고군분투가 삶이다. 삶에서 오해는 분리될 수 없다. 이해받지 못하고도 얼마든지 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외롭다.


거울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가 거울을 처음 맞딱뜨리면 거울 속 나를 거울 속의 나로 인식할게 될까? 거울을 몰라도 거울을 볼 수 있을까? 거울이 거울인 걸 배운 적 없었다면 거울은 여전히 같은 거울일 수 있을까? 거울이 거울인 걸 알게 되는 건 본능 혹은 자연의 법칙인 걸까?결국 거울은 거울이 되어버리고 마는 건지 영원히 거울을 배울 수 없는 세상도 존재하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언제 내가 거울을 배웠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거울을 인지하는 것처럼 언제 내가 공감이란 걸 배웠는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내 식대로 공감을 하고 산다. 내가 외로운 만큼 당신도 외롭겠지 하고, 내가 전하고 싶은 만큼 당신도 답답하겠지, 내가 행복하니까 당신도 행복하겠지, 이 모든 감정과 생각도 어느 날엔 누군가가 하며 살았겠지. 사실은 그 모든 게 추측이다. 우리가 거울 뉴런을 지녔다는 게 진정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피상적인 따라하기 혹은 조건 반사와 강화 따위의 생존적 결과. 결국엔 세상도 당신도 모두 변형된 나에 불과하다. 내 식대로의 해석만이 가능한 세상 속 존재로서 무력감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은 나를 제외하면 적용되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조차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법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나를 모르는 나와 나를 모르는데 아는 줄 착각하며 사는 나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각자 이해한 방식을 확인할 겨를 없이 대화가 오간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임의로 합의한 사회적 규범에 불과한 언어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단어는 사실 그 단어가 아니다. 말은 쉽게 왜곡된다. 이 말이 당신에게 온전히 전해질 확률은 0에 수렴한다.우리는 AI처럼 최대한 많은 말을 듣고 읽고 활용하며 서로 유사한 상징을 만드는 목적에 헌신하며 한 평생 애써왔다. 결코 닿지 못한다는 알면서도 서로에게 자신의 세계를 통째로 전달하려 애를 쓴다.  


그 지점이 우리를 인간답게 한다.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이 낙관을 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게




나는 오늘의 대화가 신중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한다. 나는 결코 당신처럼 당신의 문제를 당신의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당신을 알고자 시도한다. 나는 내 세계에 당신의 세계를 투영해보려한다. 내 세계에 당신을 들여볼까 한다. 나는 오늘도 나 이외에 존재를 사랑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화를 해볼까 한다. 대화가 필요한 당신을 찾는다. 같은 오해와 착각을 정교하게 만들 그런 대화를 찾는다.


착각이라도
좋다. 오해라도 좋다. 대화 이외에 우리의 내면과 태도를 조금이라도 설명할 길은 어디에도 없기에. 변덕스러운 감정의 원인을 찾고 내가 나라는 자아를 잃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할 방법도 대화가 아니면 찾을 없기에. 혼자라도 살아갈 있다는 힘을 주고 세상과 타인에게 연민을 불어넣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화이기에 나는 여전히 대화가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을 향한 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