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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Nov 24. 2020

본질대화의 조건

신뢰, 여유, 영혼의 목소리




본질대화에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읽고 수집하는 중이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는 '프레일레'라는 저자가 만든 생소한 개념이 등장한다. 



영혼도 저마다 고유한 매개변수의 조합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영혼의 프레일레라고 부르자. 프레일레를 그 사람의 주파수 특성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눈의 결정이 형태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이 저마다 다 다르듯이, 사람의 프레일레도 저마다 다르다. 프레일레가 영혼이 지닌 저마다의 개성을 결정한다.
  -리얼리티 트랜서핑2,153p


자신에 대해 만족해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는 마치 내면으로부터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그의 마음이 '영혼의 프레일레에 맞추어져 있음'을 뜻한다. 
(...)
프레일레는 취미와 관심사, 그리고 사랑과 기쁨으로 하는 모든 일로서 나타난다. 프레일레의 현은 흔히 오랜 시간 동안 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해 있다. 가끔 어떤 신호가 그 현을 울리게 만든다.
 -리얼리티 트랜서핑2, 155p




쉽게 말해 프레일레는 자신의 영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특정하고 고유한 저마다의 결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행위가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장소나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본질대화란 자신의 영혼의 프레일레에 맞추어있는 대화이다. 대화의 내용이나 주제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방식 또한 상관없다. 결국, 전반적으로 대화가 각자에게 주어지는 인상이 중요하다. 편안하고 충만한 느낌,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조금도 거부감이나 거리낌이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 삶에서 늘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애쓰던 거추장한 번잡함을 집어던지고 그저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만이 남아있는 그런 대화.




이것이 딱 무엇이다. 라고 설명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 개념을 인지하고 난 후, 경험 속에서 본질대화를 구분하기란 아주 쉽다. 배울 필요도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이 그저 알게 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조심스러움, 방어 기제를 내려놓고 순수하게 대화에 몰입해 본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아주 긴 대화를 나눴음에도 진이 빠지긴 커녕 에너지를 채우는 대화, 삶을 더 긍정하고 행복하다란 감상이 남는 대화. 만약 단 한 번도 그런 대화를 나눠본 적 없다면 언젠가 당신도 그런 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단 번에 바로 내가 말하는 본질대화가 그것이라는 걸 그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한 번 나눠 본 이후에는 나처럼 그 대화를 더 많이 나눌 방법을 골몰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과 매순간 본질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흔하고 자주 기회가 주어지는 거라면 애초에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그 중 대화 상대가 '누구'인가 라는 변수가 상관값이 가장 높다. 한 번 본질대화를 나눈 상대와는 다음에 만나서도 본질대화를 나눌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지성이나 능력 그 사람의 개성, 취향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본질대화를 나눌 '준비 상태'가 충족되었느냐의 문제다. 이제까지의 본질대화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본질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필요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신뢰 


여기서 말하는 신뢰란 대화를 나누었을 때 상대방이 내 말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지에 관한 확신이다. 내가 아무리 준비가 되었다 한들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거나 자신의 문제를 투영하며 말을 비트는 사람, 자신의 세계에 갇혀 말을 삼켜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하게 벽을 세우는 사람과는 일반적인 근황을 나누기 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신뢰란 결국 오랜 시간 함께 하고 많은 대화와 경험을 공유하며 쌓이는 부산물이지 조건이 아니지 않냐고 내게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대화를 나눌 수록 확신은 커지고 신뢰는 쌓인다. 그것 역시 신뢰의 한 종류이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신뢰는 아니다. 만남의 횟수가 본질대화를 나눌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진 못한다. 첫 만남이라고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담을 거두고 완전히 마음을 열기로 합의한 상태라면 대화를 나눠도 좋다는 마음의 확신을 바로 가질 수 있다. 또한 희박한 확률이지만, 이전 본질대화가 어려웠던 상대라 한들 어느날 갑자기 신뢰할 수 있는 준비 상태를 갖췄다면 경험과 상관없이 바로 본질대화가 가능하다.



익명성이 보장된 채팅방에서 잃을 게 아무 것도 없고 사회적 시선이나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을 때(물론 그게 되는 경우는 1/100의 경우이긴 했다), 처음 만난 상대방의 몸짓, 눈빛, 말투가 무척 자연스러워 조금의 꾸밈도 없는 진정성이 느껴질 때 일상적인 차원에서 나아가 깊은 속마음과 진정 생각하는 바를 꾸밈없이 대화해 본 경험이 있다.



어떤 신호가 되었든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며 한 발자국 나아가 좋은 대화를 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의지를 확신할 수만 있다면 본질대화는 이루어질 수 있다. 






2.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본질대화를 나눌만한 기회가 일상에서보다 자주 많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잠시의 일탈 속, 생업과 현생의 골칫거리에서 벗어난 해방감 속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구두쇠처럼 아끼던 시간을 타인에게 기꺼이 내주게 된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본질대화는 대화의 전 과정 자체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충분히 누릴만한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잠깐 짬을 내거나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 잔뜩 산재해있을 때, 진정 자신을 자유롭게 놓으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한 사람과 밤을 세워 말레콘을 걸으며 대화한 적이 있다. 그 대화는 그 사람의 뜻밖의 요청으로 이루어졌고, 나는 그가 의외로 대화할 준비가 된 열린 사람이라는 점에 기뻐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단 하룻밤이었지만, 우리는 밀도높은 대화를 나누었다. 진정 서로가 살아온 삶을 이해하고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나누었으며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고 인정하는 감정을 교류했다. 그순간만큼은 앞으로 서로의 인생에 관여할 일이 없어도 무언가를 나누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주는 환희에 가득찼고 그게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였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고 서울에서 다시 만난 그는 더이상 말레콘에서 대화를 나누던 그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본질 대화에 목 말라 있었고 그와 좋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에 또 한 번의 충만함을 기대하며 그를 만났다. 그러나 그가 내게 내어줄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에 불과했고, 그의 다음스케줄은 빈틈없이 짜여있었다. 그는 똑같았다. 내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줬고 내내 친절했으며 내 말을 경청해주었다. 그에게 고마웠지만, 이제 그와는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다음 약속과 생업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는 내게 실수하지 않았다. 다만 더이상 본질대화를 나눌 여력이 없었으며 분명 그의 생에서 그런 종류의 대화는 뒷 순위에 밀려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대화는 물리적인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 너무 바쁘면, 설사 시간이 나더라도 내 마음이 다른 일에 사로잡혀 있으면 본질대화란 절대 이루어질 수가 없다.  







3.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


아무리 대화하려는 의지가 드높고 물리적인 시간이 확보된다고 해도 본질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 위에서 말한 마음의 여유와도 어느정도 상관이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이야기이다. 



본질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솔직한 태도가 중요하다. 여기서 솔직하다는 의미는 그저 거짓말을 하지 않는 표면적인 수준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무의식적 수준에서 자기 자신을 단죄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를 멈추고 자기 자신의 존재, 특히 자신의 존재, 영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대화를 나눌 때 만큼은 대화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영혼을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경험과 생각이 아닌 사회나 타인의 일방적인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전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는다. 우리는 오랜 시간 사회화를 통해 양말이나 컵처럼 사소한 일상의 결정부터 인생의 핵심가치까지 끊임없이 사회적인 가치와 규범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목소리를 내재화하는 데 익숙해 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배운 사람이고,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했고, 얼마나 흥미롭고 다양한 사람들을 아는지는 본질대화에 있어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하며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 관심도 없고 돌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얼마나 훌륭하든 본질대화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시선과 기준에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낮추고 자책하고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 또한 자신의 문제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본질대화를 나눌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타인을 추종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만하고 때로는 주눅이 들고 때로는 자신을 미워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대화를 하고 싶다면 가끔은 멈춰서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의 영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계속 듣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용어에 상관없이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가치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중시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을 때, 본질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조건은 말하기는 쉬우나 실제로 갖추기는 쉽지 않다. 또 모든 조건은 가변적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여지가 높다. 본질대화클럽은 가장 먼저 '신뢰'를 높이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클럽에 속한 크루라면 누구든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영혼이 통하는 본질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의미가 되길 바라는 마음, 그 까다로운 절차를 본질대화클럽이 간소화 되는 창구가 되길 바랐다.  



본질대화클럽의 본질대화에 참여할 때만큼은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 또한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되길 바란다. 이건 방법적 측면의 문제로 아직 딱 맞는 해답을 찾지 못해 숙제로 남아있다. 일련의 작은 실패는 이 시간과 마음의 여유로 인해서 와해되었다. 



그러나 '영혼의 목소리' 조건 만큼은 온전히 개개인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 부분은 타인의 개입에 의해서 억지로 만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조금의 도움이나 계기,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으나 자기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대신해서 자신의 깊숙한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도와줄 수 없다. 누구나 본질대화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본질대화를 할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본질대화클럽 크루가 되기 위한 절차로 그 사람이 우리 클럽 안에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맞춰볼 따름이다. 이것 역시 내가 만든 사적인 '본질대화클럽'으로 영혼의 프레일레는 기본적으로 나의 영혼과 공명하는 사람들과 맞출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인 조건과 해석이다. 색깔이 맞고 맞지 않느냐정도이 차이이지 틀렸는지도 누가 잘났는지 선발하는 행위가 아니다. 




여기까지 읽고 내 의견을 강요하거나 무언가 가치를 주입하거나 나를 숭배하려는 집단 적어도 내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우는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오해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해도 반박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알아서 조용히 지나갈테니) 소수의 누군가를 위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겠다. 이 클럽의 목적은 대화를 통해 영혼에게 자유를 주고 행복을 느끼는 것 뿐이다. 영혼이 공명한다는 건 같아질 필요도 같아진다는 의미도 아니다. 나는 무교이며 종교집단을 만들 마음도 없다. 인생의 목표와 의미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서로의 길에서 마음의 짐 없이 소통하는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삶에서 본질대화의 확률을 높여보자는 의도만을 가졌을 뿐이다.



나는 아무쪼록 굳이 본질대화클럽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프레일레에 맞춘 대화를 가끔씩 하며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란다. 물론 이런 글을 통해 나 역시 그런 대화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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