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이 매력이 될 때
몇 달 전 자주 가던 카페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사를 오기 전 거창하게 단골로 쳐줄만한 아지트 같은 장소는 딱히 없었지만, 마음에 혼자 간직한 소중한 공간은 하나 있었다. 역 근처 적당한 크기의 동네 카페, 역과 제법 가까우면서 큰 길가에서 한 골목 들어가야 보이는 곳, 2층에 자리 잡아 아는 사람만 알던 카페, 모던하고 깔끔하며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 그리고 딱 떨어지는 깔끔한 메뉴판,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친절을 보여주는 스태프, 적당한 음악, 공부나 작업을 하러 온 사람들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이 황금 비율로 섞여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무심하며 지적인 무게감이 흐르는 창조적인 공간이었다.
그 근처에서 만날 약속이 있으면 누구라도 무리 없이 그 카페로 불러냈다. 일적으로 논의를 나눌 때도 친분을 쌓기도 찰떡같은 공간이었다. 집에서 공부하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날이면 나를 위로하듯 그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머리 아픈 문법을 외우고 작문을 했다. 자몽에이드가 맛있다며 감탄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뿌듯했고, 책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어설프지만 첫 책의 출간 기념 만남을 진행한 곳이기도 하다. 편안하면서도 설렘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생각만으로 미소가 나오던 그곳이 오래오래 남아주길 바랐다.
오랜만에 다시 들린 그 동네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를 가려던 참에 주인이 바뀌었다는 비통한 소식을 전해주신 라라님이 어쩐지 다시 그 카페를 가자고 하셨다. 그 카페에 얽힌 재밌는 일화(?)를 들으면서 카페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 건물에 당도한 순간 떡하니 존재감을 드러내는 입간판을 보며 너무 웃겨 배꼽을 잡았다. 입간판은 두 개였다. 테이크 아웃 시 메뉴 OO% 할인이라는 코로나 시대의 생존을 향한 메시지 하나와 꽃분홍색 배경에 듣도 보지 못한 다양하고 참신한 커피 메뉴가 그림과 함께 소개되어있었다.
간신히 웃음을 추스르며 2층에 당도했을 때는 다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테라스는 감성 캠핑 컨셉으로 인조 잔디가 깔려 있었고, 포토존인지 자신의 자아를 확인해 보라는 배려였는지 어울리지 않는 소품과 거울이 놓여 있었다. 우리가 좋아했던 커다란 테이블을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우는 동그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음료 메뉴는 몇 배로 늘어나 있어 다 읽기도 힘들었으며 디저트 메뉴도 상당히 많아졌다. 카페 곳곳엔 요새 유행처럼 보이는 인스타 감성(?)을 저격한 빈티지 소품들이 각기 다른 컨셉으로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웃겼던 건 선풍기였다. 아주 낡아 나의 필명인 고물과 잘 어울리는 고물 선풍기, 왜 대체 뭐 때문에 한 겨울에 선풍기가 저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라라님은 저게 얼마 전까지는 정문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서 까꿍-하고 환영해주었다고 한다.
아앜ㅋㅋㅋ 여기는 이런 곳이 아니라고요! ㅋㅋㅋㅋ
주인이 바뀌며 음식 맛이 달라지거나 아예 상호가 바뀌거나 공간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는 봤어도 이렇게 과거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으면서도 공간의 분위기와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 건 처음이었다. 눈물이 나올 때까지 웃다가 가까스로 참으며 힘겨운 대화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질 않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 카페의 매력은 그런 게 아닌데 사람들이 이 공간을 좋아하던 이유는 그런 게 아닌데, 어쩜, 손님 다 떨어져 나가겠어. 매우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라라님은 날 다시 이 곳으로 이끌었다. 그도 처음엔 이 카페는 망했다고 마음으로 사망신고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한 두 번 다른 시간에 방문한 카페에는 매우 앳되어 보이는 한 아르바이트생이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는 손님이 오고 갈 때마다 놀랄 정도로 매우 크고 우렁찬 인사를 건넸고 그의 모습을 보며 '아 저건 사장님의 인사다. 아르바이트생 일리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이후로 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젊은 청년이 카페를 인수한 후 어떻게든 잘 되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에 라라님은 감동했고 진심으로 그가 이 자리에서 이 카페로 대성공을 거두길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디저트를 잘 먹지 않는 우리는 사장님의 카페 성공을 기원하며 아이스크림 크로플을 주문했고, 이어 아주 거대하고 잘 익은 크로플과 음료, 귀여운 크리스마스 에디션 하리보과 커피 비스켓을 보며 섬세한 그의 결과물에 감탄했다.
처음에는 컨셉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고유한 특색을 무시한 채 자꾸 밖에서 답을 찾아 흉내 내려는 사람처럼 남들이 좋다는 것, 남들이 관심 있다는 것들을 죄다 끌어온 조급증이 탄생시킨 안타까운 사례, 새로운 건 좋은데 너무나 과하고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 아닐까, 열심히 노력하는 사장님이 안쓰러웠다. 나라도 말해줘야 하나. 사장님 마음은 알겠다. 레트로가 유행하고 빈티지가 유행하고, 소품들로 포토존을 만들고, 음료보다는 디저트도 함께 팔아야 하고 또 계속 유행하는 음료는 바뀌고, 그런데 그게 아닌데 너무 남의 말을 듣다가 공간 고유의 색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 단점이라고 생각한 그 특징이 이 카페의 새로운 컨셉이다. '어설프지만 아름다운 청년의 고군분투!' 공간 때문에 이렇게 웃어본 건 처음이다. 사장님의 진지하고 안타까운 자리에 놓인 소품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무척이나 즐거웠다. '아니 사장님 그것만은... 제발.' 이건 마치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식의 적극성이다! 앞으로 사장님이 이 공간에 어떤 소품을 추가로 들여오고 어떤 음료와 디저트를 만들지 엄청 기대된다. 그건 사장님이 의도하지 않은 나만의 재미난 놀이가 되었다. 단순히 음료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카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과 개성을 입어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살아있는 공간 말이다.
과거 자연스럽고 모던하고 편했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공간은 온 마음 다해 열렬히 응원하는 조금 과하지만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공간을 인식하는 변화는 사장님의 우렁차고 과하게 컸던 '어서 오세요!!!!'였다. '이건 찐이다!' '이 사람은 여기에 온 영혼을 바쳐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딱 떨어지지 않아도 세련되지 않아도 설사 그게 자신의 고유한 색깔 위로 덧칠하는 행위라도 찐 진심을 고객에게 느끼게 해 준다면 그 모든 게 상관없어진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사장님 대박 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