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글이 싫다 징징대는 프로불편러들에게, 어차피 읽지 않겠지만
좀 더 쉬운 글을 써야 할까?
올해 가장 자주 했던 고민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글을 좀 더 많이 읽을까?’는 고민에 찰떡처럼 붙던 선제 조건, 우선 쉬운 글을 써야 한다. 올해 중반부터 온라인 마케팅 강의를 듣고 인스타그램 글귀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블로그도 시작했는데 그곳의 컨셉은 둘째 치고 ‘쉬운 글을 써야겠다.’ 아니 ‘어떤 글을 쓰든 읽기 쉽게 써야지.’라고 다짐했다.
생각해보면 작문 시간이나 글쓰기를 논하는 책에서도 글은 쉽게 써야 한다고 배웠다. 가독성이 좋은 글, 만연체는 거북스럽다. 퇴고를 할 때도 불필요한 단어를 삭제하는 걸 배운다. 나조차 어려운 전문용어와 개념을 읽기 쉽게 설명해주는 카를로 로벨리에게 매료되고, 유튜버 1분 과학님을 좋아하지 않는가! 글쓰기 역시 단순함이 미덕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운 글은 겉 멋든 허세 가득한 글로 취급되는 듯 보인다. 인스타그램에서 글을 보다 보면 의견과 불만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머리가 나빠서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글이 많다. 알아들을 수도 없이 쓰는 글이 글인가, 굳이 어려운 단어를 쓰고 복잡한 비유를 넣어야만 하나 불친절하다는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글을 제대로 읽기나 하고 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는 것인가, 이해하고자 노력이라도 해보았나, 왜 작가에게 해설까지 요구하는가 피곤하다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아무런 의견도 표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이런 논쟁을 보고 있자면 자신의 글을 무의식적으로 검열하게 된다. '충분히 읽기 쉬운 글을 쓰고 있는지.’
어제 글을 쓰는 한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쉽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글을 잘 쓰지 못하겠다고.
쉬운 글에 담긴 의미를 해부해본다. 가독성이 좋은 글, 읽기 쉬운 글, 일상의 단어를 사용한 글, 직설적인 글, 짧은 글, 일상적 주제가 담긴 글, 공감할 수 있는 글, 나도 생각해본 글, 어디서 많이 본 글, 무난한 글, 깊이가 없는 글, 예상되는 글, 머리 아프지 않은 글, 단순한 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글, 무겁지 않은 글, 기분 좋게 해주는 글, 예민하지 않은 글, 공격하지 않는 글,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글
글쓰기에서 말하는 쉬운 글의 긍정적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비문을 쓰지 말라는 의미, 맞춤법을 정확히 맞춰 써야 한다는 의미이고, 독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지 않다. 글쓰기가 쓰는 이의 자기만족이 아니라 읽는 이의 주관적인 지각으로 비로소 완성되기에. 특히, 설명, 전달하거나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때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고 오해가 없도록 간결하고 깔끔한, 쉬운 글을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글이 쉬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글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있어 보이고자 하기 때문에 문맥에도 맞지 않는 어렵고 난해한 단어를 욱여넣는 글은 나 역시 싫다. 쉬운 글을 폄하하고자 쓰는 글, 그러나 그런 글이 얼마나 될까, 요새는 오히려 쉬운 글이라는 담론이 조금 읽기 거북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탄압하는 도구로 작용할 때가 많다.
상대적으로 인스타그램은 긴 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미지와 영상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감각에 점수를 주는 사람들, 어떤 SNS보다도 대중적으로 많이 이용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트렌드로 봐도 무방하다. 긴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떤 글이 단순히 길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려운 글이 된다. 또한, 우울함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는 분위기 흐리지 말고, 자신의 기분까지 잡치게 만들지 말라는 경고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도 공격한 줄조차 모른다.
나는 글쓰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본질)을 건져내서 실체화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감정이나 시각을 건져내든 그건 글쓴이의 자유이다. 또한 총체적인 하나의 완전한 지각을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 자체가 무척 까다롭고 험난하며 괴로운 일이다. 물론, 일상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지점의 질문을 던지거나 깊은 고찰을 표현하는 일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읽는 사람을 고려하고 눈치 보느라 자신이 쓰고자 하는 단어로 마음껏 태어나지 못한 글은 본래의 목적과 색깔을 잃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줄 만한, 만족시킬 만한, 이해해 줄 수 있는 수준의 글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이제는 망할 정답 사회에서 글조차 정형화된 답안이 있고 인정을 갈구하고 성취감을 획득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것인가. 그것을 쫓지 않으면 순진하고 낭만적인 현실에서 뒤떨어진 루저가 되는 것이고, 이제는 글마저도 검열할 기준이 생겼다. 유명한 작가 타이틀을 달지 못한 사람은 평이하고 재미없고 개성 없고 표면적인 주제의 글만 쓸 수 있게 허락된다. 요즘 독자들의 관대성이란 자신에게 이득이 없거나 마음에 차지 않는 무언가로 30초라도 자신의 시간을 낭비했을 때 대단한 피해라도 본 듯 화를 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수준이다.
왜 자신이 이해 못 하는 시를 두고 사람들이 어렵다, 너의 시를 고쳐서 나를 이해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왜 비유를 그만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단어를 제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일부러 게임을 하듯이, 단서 몇 개를 던진 채 마음을 던전 속에 꼭꼭 숨겨놨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읽을 수 없어도 그런 형태로 누군가가 찾아와 읽어 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모든 글을 모든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만 써야 한다고 생각할까, (답은 뻔하다. 우리는 인정 사회에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니까 타인도 그렇다고 생각도 안 하고 숨 쉬듯이 그리 생각한다)
최근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요즘 말로 에세이이다. 그 에세이는 절대 술술 읽히지 않는다. 철학 책을 읽듯이 조용한 독서실에 가서 천천히 음미하며 몇 번이고 읽었던 문장을 느리고 읽고 또 읽으며 감탄하고 감동했다. 어떤 단락은 통째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페소아의 시는 어렵지 않았다. 쉽고 일상적인 단어와 이해하기 쉬운 배열로 깊은 내면과 인생의 철학에 대해서 논했다. 페소아는 두 가지 스타일의 글을 썼다. 페소아에게 왜 쉽게 쓸 수 있으면서도 그따위로 불안의 서를 어렵고 복잡하게 썼소, 왜 그렇게 머리 아픈 내용을 담았소, 따질 사람이 있을까? 그건 페소아가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은 유명한 대문호이기 때문에? 페소아가 불안의 서를 쉽게 고쳐 썼다면 절대로 지금만큼 한 문장마다 누군가를 각성시키며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쉽게 쓰고 싶지 않다. 굳이 모든 사람들에게 읽히고자 평이하고 무난하게 쓰고 싶지 않다. 당신이 뭐라 하든 쓰고 싶은 대로 쓸 것이다. 길든 짧든 그 생각을 건져내 실체화하기에 적합하고 결이 맞는 단어를 사용해서, 당신이 알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심오하고 복잡하고 짜증 나는 온갖 것들에 대해 글을 쓸 것이다. 당신의 기분이나 사정보다 글에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P.S. 같은 메시지도 부드럽고 간결하고 쉽게 쓰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더 이상 제 글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