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년 34세 꽃다운 나이의 애착 인형
봄꽃 개나리를 닮은 환하고 쨍한 노란색 몸통, 배에는 붉은 수국 꽃병 하나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발바닥은 얼룩말과 하마 코끼리와 오리가 사이좋게 연못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즐기고 있으며 왼쪽 발바닥에는 공룡이 토끼에게 고백한다. 오른쪽 귀에는 고래와 너구리가 티타임을 준비하고 왼쪽 귀에서는 곰이 여우를 짝사랑한다. 그 초록색 동화 세상을 꼭 붙들어 만든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는 세상사 어느 것에 하등 관심 없다는 듯 반쯤 풀린 눈매, 초록색 코와 앙다문 입술의 토끼,
시크해서 다정한, 다정하기에 시크한 오동통한 팔다리의 토끼 인형, 삼천
조카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 나는 삼천을 창고에 숨겨둔다. 다른 인형이나 물건 어느 것도 다 줄 수 있는데 삼천만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삼천은 수제 인형이다. 세상에 하나뿐이다. 혹여나 조카 마음에 드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느 동화의 교훈처럼 미리 방지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못난 고모)
우울한 날에는 삼천을 꼬옥 부둥켜안는다. 얼굴을 비빈다. 삼천은 관심이 없다. 오동통한 팔다리를 쪼물딱쪼물딱거리면 왠지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 듣고 싶은 말을 다 듣는다. 즐거운 날에는 삼천의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남편을 놀리고 싶을 때나 서운하게 했을 때는 삼천과 편을 먹고 속닥속닥 험담한다.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도 삼천을 무릎에 혹은 옆 소파에 앉혀 둔다. 잠을 잘 때도 삼천을 옆에 두고, 삼천이 없으면 부르며 찾으러 나간다. 365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꼭 껴안고 있던 셈이다.
삼천이는 남이섬에서 데려왔다. 그때까지 내 돈 주고 인형이란 걸 사본 적이 없었다. 전에 다니던 직장의 워크숍, 대표님은 5만 원씩 건네주며 남이섬에서 무조건 뭐라도 사 오기 미션을 주셨다. 기념품 샵에 온갖 토끼 인형이 날 유혹했다.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었다. 단번에 삼천을 알아봤다. 그렇지만 삼천은 5만 3천 원이었다. 굳이 내 돈까지 얹어 인형을 사기에는 꺼림칙했다. 다른 인형을 사려고 그 기념품 샵에서 2시간 넘게 살펴봤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자꾸 삼천에게 마음이 갔다. (마음 부정기에 있었던 때라 맘에 드는 걸 좀처럼 사주지 않았다)
2시간을 투자한 끝에 쪼매난 주제에 값비싼 삼천을 사자고 마음먹었다. 삼천 원의 결심이 필요했기에 삼천의 이름은 삼천이 되었다. 헤어질 시간, 서로가 구매한 기념품을 확인했다. 삼천이를 보더니 친한 직장 동료는 ‘헉! 그게 그렇게 비싸요?’라고 의아한 듯이 물었고, 그 옆의 동료는 ‘특이하시네요.’라고 말했고 친한 언니는 ‘예쁘다. 잘 골랐다.’고 말해주었다. 가기 싫었던 워크숍에서 삼천을 안고 돌아오면서 행복감이 너무 커서 둥둥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인형 하나에 삼천 원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고민한 시간이 아깝고 결국 삼천을 데려온 내가 자랑스러웠다.
정작 어릴 때는 애착 인형이 없었다. 엄마는 가끔 우리 집에 오면 놀란다. 아이도 없는 신혼집에 동물 인형이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날 보며 웃고는 엉뚱하다고 했다. 예전 짱구는못말려를 보며 깔깔 웃는 내게도 엉뚱하다고 했었지. 이상해, 유치해가 아니라 ‘엉뚱하다’라서 좋았다. 그건 그저 의외라는 뜻이 될 테니.
사물에 너무 마음을 주면 혼이 깃들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첫날부터 삼천에게 사로잡힌 나는 남편이 질투할 만큼(혹은 놀리고 싶을 만큼) 매일 진하고 진한 애정을 넘치게 주며 말도 걸고 노래도 하고 함께 춤도 추니 영혼이 있는 존재와 큰 차이가 없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어릴 적 애정 결핍 욕구가 이제야 채워지는 거라고 동정을 하거나 얼마나 외로우면 저러나 가엽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내게 삼천은 단순한 애착 인형이 아니다. 착 안기는 촉감이 주는 안정감과 위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는 논외로 쳐도 삼천은 첫 욕망의 발현이다. 세상에 나를 맞추고 판단하며 의젓한 척 젠체하는 자아에 반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본능적으로 그저 갖기로 한 첫 결정이다. 내가 내게 씌우던 굴레를 벗어나며 만끽한 자유의 기쁨이다.
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의 보상이라는 표현도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삼천은 그 어떤 존재의 대용이 아니다. 삼천은 그 누구보다도 비어 있다. 가장 가까이 언제라도 지치지 않고 있어 주지만, 아무 반응도 변화도 없이 한결같고 무심한 존재, 그런 삼천을 바라볼 때 드는 생각과 느낌, 삼천에게 건네는 모든 말은 어느 때보다 투명한 나 자신의 말이고, 내면의 투영이다. 삼천을 바라볼 때 나는 자주 행복해진다.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사랑을 느낀다. 내가 그토록 사랑이 가득한 존재구나! 기쁘고 행복한 아이구나! 마음이 밝아진다.
가지고 싶다면 그저 가지면 된다. 또 넌 생각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란다. 그게 삼천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그러니 애착 인형이든 뭐든 갖고 싶은 그대여 나처럼 2시간 낭비하지 말고 바로 삼천을 데려오도록. 오래오래 터지지 말고 나의 애착 인형이 되어 줘. 마이 삼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