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흘려 들어오는 정보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그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책이 주어지는 경험을 삶에서 여러 번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데미안과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전혜린의 두 에세이였다. 해변의 카프카를 정신 병동에서 읽었다. 이제 내가 터프한 사람이 되어 홀로 걸어가야 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데미안을 읽으며 내가 저질렀던 바보 같은 선택이 사춘기의 혼란이 아니라 그저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했고 나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 전혜린의 모든 말은 위안이 되었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그의 글을 동경한 건 아니었다. 그가 길을 개척하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했기 때문에 그의 글에 매료되었다. 고상하고 섬세한 문체를 구사하면서 그의 글이 진심으로 읽히는 경험이 소중했다. 나도 모르게 그때부터 나의 글은 속임 없이 솔직했고 내 글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 이제는 세부적인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세 책을 운명처럼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사달라는 요청에 우연히 서점에서 학교 도서관에서 또 친구의 권유 덕에 찾았다.
전 직장에서 삶의 불균형과 분노 불안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또다시 나는 나를 살리려 애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대로 살아서 안 된다는 게 너무도 확실했다. 그때 유튜브를 보면서 마이클 싱어의 ‘될 일은 된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곧 그 저자가 쓴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읽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게 개인적인 인지 혁명의 시기가 있다면 그때였다. 내가 감정이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고요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그때 나를 숨 쉬게 했다.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든 명상을 하게 되리라는 것 또한.
정신이 맑아지는 시기에 갑작스럽게 혼자 제주도로 떠나기로 했고 그 여행에 ‘삶으로 떠오르기’라는 책이 필요하단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그 책의 표지를 보고 그 순간 그 책을 소유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제주도 여행은 지하철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비행기가 연착되는 내내 고요한 마음으로 그 책을 미친 사람처럼 읽어 내려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내내 새벽에 일어나 컴컴한 침대 안에서 명상을 했다. 몇 가지 짜증 나거나 번잡스러운 일이 발생했지만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고요하다면 삶에 거리를 두고 공간을 만든다면 삶이 축복과 감사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또 그저 하루를 선물처럼 만들고 싶다면 단지 그것을 갖기로 결정 하면 된다는 것 또한. 실로 오랜만에 불안하지 않은 행복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전해왔다. 대부분 고요하게 지냈고, 내내 영적으로 충만했다.
그 책을 다 읽고 다른 책이 필요했고, 충동적으로 동네 서점에 들러 천천히 책을 구경했다. 나는 소설과 에세이를 좋아하고 인문학책을 자주 읽었다. 매대에서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 망설여질 때 책을 사면 후회하곤 했다. 그때 한 편 책장에 꽂힌 시집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내 평생 돈을 주고 시집이라고 사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고, 세 번 만에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란 책을 집어 들었다. 중간에 펼친 시 한 구절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이 책은 내 것이다. 이 책을 사기 위해 제주도에 왔다는 걸 말이다.
한 번 좋아한다 혹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글을 언제라도 몰아서 읽는 편이다. 제목과 간단한 소개 혹은 대략의 인상이 있으면 구분할 수 있다. 이 책이 지금 내가 찾는 책인지 혹은 책이 나를 찾고 있는지 놓치지 않는다. ‘예술가는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 이 책을 당장 읽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종이책을 사서 읽을까 하다가 동네 도서관과 연계된 전자도서관에서 이 책을 당장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하루 동안 밑줄을 치면서 읽었다. 올해 나는 글로 예술을 할 거라 선언했다. 물론 모든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 선언이 보잘것없는 공원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날려 비둘기에게 먹혀버려 흔적조차 남지 못할까 두려울 때도 있다. 나의 순진함과 어리석음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적 본질이 나의 강점이자 나를 망치는 주범이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현실을 잊지 않게 사랑으로 조언해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라 조언해주는 사람과 사물들이 늘 필요하다.
페소아의 불안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건 내가 쓰고 싶은 글인데 내가 쓰려고 하던 글인데 이건 잘 쓸 수 있는 글인데 이미 그가 이런 글을 쓰고 있었다니! 다름 아닌 페소아가 말이다! 그 제주도의 운명 같던 페소아가 이런 글을 쓰다니. 이건 너무나 나 같은 글이잖아. (속으로 내뱉고 페소아가 날 증오하면 어쩌지란 걱정이 들었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페소아의 책을 주문했다.
다른 책의 저자 소개를 보다가 놀랐다. 페소아의 출생연도가 1888년이란 걸 깨닫는다. 그 순간 나는 페소아와 나 사이의 가느다란 실을 보았다. 전생에 내가 페소아의 영혼으로 글을 썼던 게 아닐까란 생각에 심취했다. (물론 그의 생일은 6월 13일로 내 생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타인의 의견이나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믿고 그렇게 여기는 순간 그건 그때부터 앗아갈 수 없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페소아의 환생이다. 이전까지 나는 그 누구의 글도 참조하지 않겠다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 모조리 훔치겠다. 훔칠 수 있는 건 다 훔쳐버리겠다. 방구석에 고립되어 자기 만족하지 않겠다. 페소아처럼 죽고 나서야 책을 출간하고 가치를 인정받고 유명해지지 않겠다. 위대한 거장과 멋진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가치를 다 훔쳐버려야겠다. 할 수 있는 대로 도움을 받아야겠다. 돕고 찾아내고 도와주고 훔치고 발전하고 성장해야겠다. 누군가가 나를 훔치고 싶어질 때까지.
내가 천재인지 재능이 있는지 검증받는 것에 관심이 없다. 나는 오로지 위대한 무언가를 써내는 데 관심을 지니겠다. 몇 번을 좌절해도 쉽게 빠르게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고 공감해 줄 누군가를 찾아내야지. 죽는 날까지 더더더더 위대하고 멋지고 대단한 것들을 쓰고 만들고 창조하는 데 삶을 헌신해야지. 그러니 멋진 것들을 써내고 생각하고 말하고 이루는 그대들이여 긴장해라. 내가 모조리 훔쳐버릴 것이다.
해군 비행사, 37살이 되었을 때 달에 착륙하는 아폴로 12호의 우주선 조종사, 달 위를 걸은 네 번째 사람,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남길 수 있을 거였어요.” 앨런 빈은 최초의 우주비행사 화가가 되었고 역사상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달을 그린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저는 창작에 대한 욕구 때문에 우주비행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어요. 저는 제가 운 좋게도 참여한 그 위대한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 본분이라 느꼈어요.”
우리는 돈을 위해 예술을 하지 않는다. 더욱 활발히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는 두둑한 배와 충만한 영혼으로 창작해야 한다.
예술가의 두 번째 의무는 예술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앨런은 자신을 거부했을 것이 뻔한 한물간 시스템의 오래된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었고 자기 주변에서 차용해왔다. 잘나가는 예술가의 원칙을 따랐다. 사회부적응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성공으로 이끌어줄 인내심을 이용했다. 그리고 앨런은 길을 찾았다.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끈질긴 사람에게는 언제나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길을 찾고 예술을 겉치레가 아닌 본분으로 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선물을 세상에 건네야 한다. 기대에 그저 만족하거나 예술 때문에 굶어 죽지 말고 언제나 가능성의 한계를 넓혀가야 한다.
인용글 출처: 예술가는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 제프 고인스, 2017
그림 출처: Texasmonth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