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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Feb 11. 2021

겁쟁이 사자

8차선 도로 중앙선에 서서 교차로 질주하는 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찮고 보잘것없이 아무것도 아닌, 

대수롭지 않은 어쩌면 평범하다 짚어주기도 아쉬울 그런 존재

그것을 증오하지만, 그것이 애달프지만, 그것이 날 주저앉히지만

그것이기에 진정 아름다울 수 있다고



평생 반짝거리는 확실한 실체를 갖는 대신 마음속에 그 무엇도 담지 못하거나

천덕꾸러기 몰골로 평생 발견되지 못할지 모르나, 희귀한 확률의 소중한 작은 빛을 품고 살 수 있는 삶

고민 없이 빛을 선택하고는 매일 거울을 비춰 보며 괴로워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별 볼 일 없어야 했다.

별 볼 일 없는 모든 이가 소설 속 주인공은 아니었다.


겁쟁이 사자

용기가 없어 호령하고 포효하고 왕 자리에 감히 앉을 생각을 못 했다.

나는 사자가 아니다. 나는 사자가 아니라고. 

날 사자라 부르지 마.


그렇지만 꿈속에선 늘 사자였다.

태양 빛에 반사되는 황금빛 갈기를 지닌, 늠름하며 우아한 사자


사자는 상냥할 수 없다. 사자는 초식 동물과 친구가 될 수 없다.

사자는 단지 왕이 될 수 있을 뿐


그렇지만 겁쟁이 사자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정할 수 있다.

겁쟁이 사자라면 왕인 동시에 동료가 신하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속성을 비틀고도 더 많은 것을 품을, 이상하지만 이상적인 사자가 될 수 있다.



그래, 나는 겁쟁이 사자

숲에 숨어들어 여전히 누군가를 겁내게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지. 

울고 싶으면 울자 불안에 덜덜 떨자. 

다른 사자가 되지 못해 숨지도 사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말자.

세상에 없는 멋지고 위대한 사자가 될 수 있다.

그래 너는 사자다. 겁쟁이 사자




P.S. 나의 도로시는 내게 늘 용기 물약을 준다. 플라시보 효과는 언제나 작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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