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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Mar 07. 2021

Happy Together

'레일라쿼텟'공연을 보고

운명은 얄궂다. 내가 그를 알게 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3년 혹은 4년쯤? 확실한 건 그를 알게 된 이후부터 늘 꿈꿔왔던 건 그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과 호흡 몸짓 하나하나를 눈으로 담으며 상상해왔던 그의 노래를 같은 자리에서 숨죽이고 듣는 날을 고대해왔다. 그러나 그런 멋진 기회가 3년 만에 찾아올 무렵 아무리 애써도 무기력은 달아나지 않았다. 공연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온전히 생기 있는 에너지를 품고 공연에 가는 건 불가능했다. 할 말도 소망도 없이 그저 예전부터 품어 온 이유모를 바람을 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혼자라서 다행이었다.


아지트 그곳은 공연장이라기보다는 아늑하고 비밀스러운 아지트였다. 이름 모를 술병과 야생적인 드로잉과 날 것의 그림이 벽 곳곳에 붙어있었다.  어느 하나 반복되지 않을 책이 살뜰히 꽂혀 있고 맥컴퓨터와 노트북이 놓여있었고 곳곳에 창작물이 숨겨져 있었다. 사적이고 내밀한 예술가들의 은밀한 파티에 초대된 기분이었다. 정리되지 않고 여백이 느껴지는 동시에 온갖 것들을 시도해봐도 좋을 열려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산만한 기분이라기보다는 모험적이었다. 그 가운데 어딘가 이질적이고 친근한 샹들리에 아래 낮고 다정한 무대가 있었다. 드럼, 기타, 콘트라베이스.


사람들이 하나둘 왔고 콘서트는 정시에 시작되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 늦어지는 관객을 기다려주는 여유와 배려가 있었다. 어딘가 쫓길 필요 없이 느긋한 바이브와 마스크를 쓴 채 난생처음 만난 사람과의 생경한 긴장감이 두루 섞여있었다. 고요하고 기대감이 있는 동시에 살짝 발끝이 간질거렸다. 모두가 가까워서 다정하고 두근거렸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콘트라베이스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자신의 몸체보다 더 큰 콘트라베이스를 껴안고 어르고 달래며 저음의 연주를 하느라 몰입한 연주자를 보며 그 처음을 상상했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콘트라베이스에 할애하고 헌신했을까. 온몸으로 악기를 섬세하게 안으며 연주하는 그를 보며 콘트라베이스가 그의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때 생각했다. 난 재즈를 모른다. 재즈에 관해서 하나도 모른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이렇게 멋진 음악을 연주해내는지 즉흥적인지 훈련에 의한 것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난 곡도 모르고 재즈를 즐기는 방법도 모르고 재즈에 관해서라고는 하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의 연주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딘가 갇혀서 멈춘 내게 봄이 온다고 봄이 오니 깨어나라고 조심스레 미풍을 불어넣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큰 존재감이 사실은 아무 의도 없는 일상적 움직임이나 관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신기하고 허무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흐를 뻔했다. 오늘의 세상과 나는 너무 일치돼서 그 모든 게 내 얘기로 들린다. 위험하다.


레일라쿼텟 - Happy Together



연주가 멈추고 드디어 그가 노래를 시작했다. 평소 그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쓸쓸하다. 어딘가 안갯속을 걷는 부드러운 환상 같다. 이상화하고 싶지 않지만 사라질까 봐 움켜쥐고 싶은 목소리,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몽환적이었지만 힘찼다. 생동감과 에너지가 있었다. 분명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의 존재감을 확신하지 않을까,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살아있다고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혹독하고 고돼도 분명 무대에서는 행복하리라. 그가 행복해 보였다. 내 생각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슬픈 노래를 부를 때도 너무 행복해 보여서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가 행복해서 다행이었다. 내 마음이 투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행복했다.



그는 어떤 계기로 가수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다가 그에 대해 꽤 많이 알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와 다를 바 없었다. 난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그러면서도 내가 느낀 행복감이 진짜이길 바라다가 진짜라고 믿어버렸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곡 설명을 하고 감사를 전하는 그는 그 모든 게 익숙해 보였다. 문득 나는 그에게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 괜찮았지만 계속 아무것도 모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의 노래뿐 아니라 인생이 듣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아주 멀리 있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결코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내게 곧 출간된 산문 가제본을 보여주었고, 나를 보자마자 알아봐 주었고, 내게 놀러 오라 상냥하고 친근하게 미소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나는 그런 분에 넘치는 호의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은 동시에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럽지만 그의 노랫소리도 호의도 아름다워 나를 감추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머물러야 했다. 부끄럽지만 아마 다음이 있다면 나는 또 어정쩡하게 앉아 내가 어떠하듯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재즈를 듣겠지.



그날의 외출은 내겐 참 다행이었다. 가는 내내 빨간책방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천재와 창작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늘 나는 무진에 다녀온 셈이다. 닫히고 겨울잠을 자던 무디고 갇혀있는 내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봄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가사말처럼 이제 봄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깨어나야 한다는 걸. 더는 부끄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며 그가 마지막으로 부른 Happy Together를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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